지역농협 경쟁체제 도입 무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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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농업협동조합의 개혁이 정치권의 개입으로 무산됐다. 국회는 9일 지역농협 간 경쟁체제를 도입하려는 정부 방침을 없앤 내용의 농협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농림부는 지난 6월 농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시.군내에서 조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농협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현재 농민들은 자신이 사는 읍.면에 있는 농협에만 가입할 수 있다. 1개 군에 평균 10개의 조합이 있는데 규모가 작다 보니 농산물을 대량 생산해 대량 유통하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조합원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 농협끼리 경쟁하도록 구역제를 폐지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쟁력이 없는 농협이 다른 농협에 흡수 합병돼 장기적으로 1300여개 소규모 조합이 500여개 대형 조합으로 재편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는 정부안에서 구역제 폐지 부분을 아예 없애버렸다.

농림해양수산위의 한나라당 간사인 이방호 의원은 "구역제를 없애면 조합끼리 과당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며 "구조조정이나 다른 방법으로도 농협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도 "구역제가 없어지면 조합장 선거에서 진 후보가 지지자들을 모아 새로운 조합을 세우는 폐단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영일 서울대 교수(농업경제학)는 "지역 독점 체제가 유지되면 조합 간 통폐합을 통한 구조조정이나 규모화가 불가능하다"며 "농협이 유통 체계를 개선하고 마케팅 능력을 높일 생각은 하지 않고 강력한 지역 네트워크를 정치적인 힘으로 이용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국회는 또 경제(농업)사업.축산.신용 등 농협 부문별 대표이사의 임기를 4년에서 2년으로 축소하고, 현행 상임 감사제도를 감사위원회 형태로 바꾸는 내용을 농협법 개정안에 추가했다.

농업계는 국회의 법률안 수정이 농협중앙회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 법 개정으로 농협중앙회장의 지위가 비상임으로 바뀌면서 회장의 입지가 축소되자 중앙회가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대표이사 임기가 짧아지면 평가를 자주 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인사권자인 중앙회장의 눈치를 보느라 소신 경영을 하기 어렵게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감사위원회도 명분은 좋으나 감사위원 중 조합장 비율을 절반으로 정해놓고 있어 지역조합에 대한 감시를 제대로 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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