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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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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스포츠 애니메이션에서 시대상을 읽는 것은 흥미롭다. 1970년대 국내에서 인기를 모았던 작품들(거의 일본 작품이다)은 승리를 위해 고된 훈련을 이겨내는 주인공의 근성(根性)을 강조하고 있다. '타이거 마스크'가 그랬고 '도전자 허리케인'도 마찬가지였다. 만화이긴 하지만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90년대 후반을 달군 '슬램덩크'의 경우 좀 달랐다. 고된 훈련 대신 천부적 재질을 가진 주인공들의 모습이 강조된 것이다. '헝그리 정신' 보다 '잘하니까, 좋으니까 한다'는 의식변화가 두드러진다.

21일부터 KBS2-TV(매주 목 오후 5시30분)를 통해 방영되는 26부작 '우정의 그라운드'는 월드컵 분위기에 맞춰 축구를 사랑하는 한·일 양국 젊은이들의 우정과 승부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기획 당시 한·일 합작으로 추진됐던 만큼 NHK 위성방송(BS2·매주 월 오후 6시)에서는 '킥 오프 2002'란 제목으로 18일 이미 방영이 시작됐다.

KBS미디어·드림키드넷·손오공이 2년여 동안 36억여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이 작품은 한국에서 뛰어난 축구 선수로 활약하다가 이탈리아로 간 강찬과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로 이주, 청소년 축구팀에 들어간 겐니치가 한 팀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다가 각각 양국의 월드컵 대표로 선발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신세대 축구 천재들이 어떻게 성장발전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 회에서 "난 월드컵 같은 것은 관심없어. 신나게 축구만 할 수 있으면 돼"라고 말하는 겐니치는 전형적인 신세대다. 조용한 성품으로 그저 자기 할 일만 한다.

강찬은 그런 겐니치의 잠재된 승부욕에 불을 붙인다. 다소 건방져보일 정도로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지금까지 한국인의 캐릭터가 주로 우직했던 것에 비춰보면 색다른 설정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2020 원더 키디'를 만들었던 드림키드넷의 김대중 감독은 "힘든 훈련과 좌절을 극복하고 최고가 되고 싶은 두 주인공의 우정에 초점을 맞춘 휴먼드라마 "라고 소개했다.

컴퓨터와 수작업을 오가며 역동적인 화면을 연출하고 있는 이 작품의 성공 여부는 경기 장면뿐 아니라 주인공들의 심리, 그리고 강찬과 겐니치의 여동생 미키와의 사랑이 얼마나 세밀하게 그려질 것인지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지난해 NHK에 편당 1백만엔(약 1천만원)이라는 고가에 수출됐다. 또 유럽 지역에는 편당 2만달러(약 2천6백만원)에 수출돼 곧 방송을 탈 예정이다.

그동안 NHK 위성을 탄 국산작품으로는 '녹색전차 해모수''레스톨 특수구조대'등이 있는데 모두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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