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패자로 기록된 '배신자 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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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누구나 공감하는 '악의 축'에 해당하는 개념이 있다면 아마 배신이리라. 하지만 신간 『배신자의 중국사』를 보면 충성을 강조하는 유교 사회인 중국에서도 배신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자극적인 제목 그대로 이 책은 배신을 주제로 중국 역사 2천5백년을 조명한다.

정확히 말한다면 이 책은 '실패한 배신자 열전'이다. 역사기록은 어차피 승자의 시각이 반영되기 때문에 '성공하면 역성(易姓)혁명이고, 실패하면 쿠데타'라는 사실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 때 복수의 화신으로 불리는 오자서에서부터 시작해 명말청초(明末淸初)시대 애인 때문에 조국 명나라를 배반한 오삼계에 이르기까지 12명의 인물을 통해 중국사를 넘어 인간과 사회를 다시 보게 한다.

권력욕에 휩싸인 군상들이 펼치는 역사의 드라마는 배신이 배신을 부르며 인간 세상의 추한 면을 드러낸다.『사기(史記)』 『한서(漢書)』 등 중국의 대표적 역사책과 위·진(魏·晋)시대 명사들의 일화를 모은 『세설신어』 등을 참조했다. 이 책에서 춘추전국시대는 가장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이다. 그런데 배신의 개념은 춘추전국시대와 그 이후를 구분해야 한다. 이른바 춘추전국시대의 유세객(遊說客)들은 자신의 부국강병책을 제후들에게 세일즈하는 코스모폴리턴이었다. 애국심이나 충성심이란 개념이 애초 자리잡지 않았다.

공자조차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결국 자신의 뜻을 펼칠 제후를 만나지 못하는 과정이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이 책이 배신자의 원조로 삼은 오자서와 전국시대 합종연횡책을 고안해 낸 소진과 장의 등은 그런 점에서 배신자라기보다는 춘추전국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전형적 인물이라고 파악해야 할 것이다. 물론 오자서가 개인적 원한을 갚기 위해 적국에 망명해 조국을 파멸로 이끈 일 등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결국 이들은 모두 세 치 혀로 난세를 휘젓다 끝내 비운을 맞는다.

저자가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책의 행간을 통해 역사의 정칙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의 왕조나 시대가 활력을 잃는 것은 향락에 빠진 지도층의 무능과 부패 때문이다. 한나라를 뒤엎은 왕망, 위진남북조시대의 사마의·왕돈·환온, 그리고 당나라 현종 때 안녹산 등 이 책의 주인공들이 조국에 배반을 꿈꾸는 것은 개인적 권력욕에 정권의 부패상이 합쳐졌기에 가능했다.

배반의 관점으로 볼 때 재미있는 것은 남송시대 진회라는 인물이다. 진회는 이민족인 금나라와의 강화를 도모했다는 이유로 한족(漢族)의 반역자라는 뜻인 이른바 '한간(漢奸)'의 대표적 인물로 중국에서 가장 미움을 받아 왔다. 그런데 이는 한족이 중국의 중심적 민족으로 자리잡은 이후의 현상으로, 진회를 기점으로 해 배반자의 개념도 한족 중심으로 바뀌는 것이다.

배영대 기자

Note

저자의 상상력이 부분적으로 가미돼 소설처럼 읽히는 이 책에 중국인의 입장에선 불쾌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사 서술의 시오노 나나미'라는 칭송을 듣는 일본인 저자는 배신자의 역사를 통해 중국사를 더 설득력있는 방식으로 요리해 보이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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