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정씨 등 KBS 성우 1기, 기념 드라마 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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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라디오 드라마의 르네상스가 올 수 있다면…. TV 드라마와 달리 마음대로 상상하며 들을 수 있잖아요."

8일 KBS 라디오 스튜디오에 모인 '원로'성우들의 바람이다. KBS1 라디오 'KBS무대'(97.3MHz. 일요일 밤 11시10분) 녹음을 위해 만난 이들은 KBS 성우 공채 1기생인 오승룡.박용기.고은정.김수일(사진.왼쪽부터)씨. 1954년 12월 KBS 전신인 서울중앙방송에 입사한 첫 공채 성우들이다. 이들은 방송생활 50년 기념으로 12월 한 달 동안 'KBS 무대'에 직접 출연하고 있다.

이들의 젊은 날은 라디오 드라마의 전성기였다. 56년 12월 시작된 국내 최초의 주말연속극 '청실홍실'이 인기를 끌면서 57년부터는 일일연속극 '산 넘어 바다 건너'가 시작됐다. 아직도 방송 중인 문예 창작드라마 'KBS 무대'도 57년 첫 전파를 탔다.

60년대에 들어오면서 MBC.TBC(동양방송).DBS(동아방송) 등 민영방송의 연이은 개국으로 라디오 드라마는 황금기를 맞았다. 특히 TBC와 DBS의 연속극 맞대결은 치열한 공방전으로 이어졌으며, 60년대 후반에는 저녁 매시간 연속극이 편성되는 기현상을 빚기도 했다.

"낮에는 라디오 드라마 녹음하고 밤에는 영화 더빙하느라 애 넷을 낳으면서 출산휴가를 2주 이상 써보지 못했다"는 고은정씨는 "우리가 아니면 방송이 무너질 것 같다는 착각 속에서 50년이 갔다"고 말했다.

라디오의 영광은 70년대 후반 TV 보급이 급격히 늘면서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성우 더빙으로 대사를 처리하던 영화 제작방식도 바뀌었다. 성우의 역할도 그만큼 줄어든 것은 아닐까. 경기고 3학년 재학생 신분으로 공채 시험에 합격, 성우 생활을 시작한 오승룡씨는 "TV.라디오에만 의존하지 말고 오디오 북 같은 새로운 활동 영역을 찾아보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이들의 반세기 동안의 방송생활은 26일 방송될 'KBS 무대'에서 드라마 '만남'을 통해 극화된다. 방송작가로 활동영역을 넓힌 고은정씨가 각본을 썼다. 동기생 중 타계한 신원균.이창환씨 등 망자와의 대화를 통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들의 애환과 즐거움을 담았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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