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패 속에 출범한 부패방지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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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부패의 악취가 대통령 주변에서까지 진동하는 25일 부패방지법이 발효되고, 공직자 부패 방지를 전담할 대통령 직속의 부패방지위원회가 출범했다.

현 정권의 부패추방 의지를 응축했다는 이 특별기구의 처지는 너무도 기구하다. 청와대.검찰.국정원 등 국가 권력기관에 군(軍)까지 비리의혹으로 뒤범벅된 시점이어서 모든 게 희화화(戱畵化)되고 있다.

고위 공직자들이 부정에 줄줄이 연루된 게이트가 해를 이어 연발하는 터에 '부패방지' 간판을 내걸었으니 우스갯거리가 될 수도 있다. 부패방지위가 내건 '깨끗한 사회, 건강한 나라, 희망찬 나라'라는 캐치프레이즈 역시 때가 때인지라 민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고약한 정황 때문에 부패방지위가 더 기대를 모은다. 검찰과 경찰.감사원 등 사정기관이 멀쩡하게 존재함에도 부패방지위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공직의 부정부패가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이었고 실제로 이 나라를 시끄럽게 만든 게이트들은 이를 방증해준다.

차관급 이상 공직자나 시.도지사, 판.검사, 고위 경찰관, 장관급 이상 장교 등의 부패행위는 반드시 검찰에 고발하고 검찰이 공소제기를 않을 경우는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하게 한 것은 마치 오늘의 게이트 만연을 예상한 감마저 준다.

직접 수사권조차 없는 부패방지위가 하면 얼마나 하겠느냐는 빈축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간의 게이트가 말해주듯 수사권 유무가 부패 척결의 척도는 아니다. 사정기관 고위 간부들이 비리를 감싸고 돎으로써 도리어 부패가 확산되고 은폐되는 상황이 벌어진 게 아닌가.

그렇게 보면 부패방지위의 고발권.재정신청권.재조사요구권은 결코 미약하지 않다. 여기에 국민의 고발의식을 접목시킨다면 가장 강력한 부패방지 기구로서 기능할 수 있다. 강철규 위원장의 예고처럼 "고위 공직자들의 크고 작은 부조리를 먼저 잡는다"면 입법불비와 부족한 인력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 사명감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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