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하토야마와 호소카와의 공통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8면

그는 60세가 된 98년 “꽃잎이 흩어짐은 때를 아는 것, 이 세상 꽃은 꽃대로 사람도 사람대로”라는 말을 남기고 의원직을 사퇴, 정계에서 은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계 복귀 등 여러 억측이 있었지만 그는 도자기·서예 등 작품 활동과 집안의 문화재·미술품을 관리하는 에세이(永青) 문고 이사장의 삶을 살고 있다.

그가 지난달 총리 시절 쓴 일기를 책으로 펴냈다. 『나이쇼로쿠(内訟録)-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대신 일기』다. ‘나이쇼로쿠’란 제목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책망하는 이가 없다”는 논어의 글귀에서 따온 것이다. 바쁜 총리 일정 틈에 메모 형식으로 일정만 기록한 날도 있지만 행간에는 제1당인 야당 자민당의 공세 속에 연립정권을 꾸려 나가야 하는 총리의 고뇌가 담겨 있다. 매일 일간지에 게재되는 총리 스케줄과 주요 정치인들의 인터뷰 내용도 함께 실어 이해를 도왔다.

정계를 떠난 전직 총리의 일기가 세간에 관심을 끄는 이유는 딱 하나다. 지난해 9월 역시 비자민 연립정권으로 출범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가 취임 8개월 만에 사임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호소카와·하토야마 두 정권은 비자민 연립정권이라는 점 외에 닮은꼴이 많다. 총리가 미·일 관계 재정립을 언급한 것이나 경제가 장기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도 같다. 호소카와가 8개월의 단명 총리로 물러난 표면적 이유는 사가와규빈이라는 기업으로부터 1억 엔을 빌린 문제다. 그러나 그를 총리관저에서 몰아낸 가장 큰 이유는 연립정권의 와해였다. 처음부터 정책적인 동질감 없이 자민당 타도라는 대명제 아래 급조된 연립여당 내에서 심각한 지도력 부재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가 정치 생명을 걸고 추진했던 정치 개혁 법안이 94년 1월 연립정권 파트너인 사회당의 반대로 참의원 본회의에서 부결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하토야마 정권은 오키나와의 주일 미군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가 결정타가 됐다. 출범 8개월 만에 사민당이 연립정권 이탈을 선언했고, 여야의 사임 압력에 견디다 못해 퇴임하게 됐다. 공교롭게도 호소카와 정권 때 관방 부장관으로서 정권 출범과 지지율 하락·퇴진이라는 일련의 사태를 지켜봐야 했던 하토야마 총리. 태생도 정책 공약도 다른 정당이 한 지붕 밑에서 뜻을 맞추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17년이 지난 지금 새삼 깨닫고 있을지 모른다.

박소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