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미니멀 맥시멀' 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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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가로.세로 각 20㎝의 정사각형 금속판 1백개가 격자무늬를 이루며 바닥에 깔려있다. 미술관에 전시돼 있지 않다면 그냥 밟고 지나갔을 단순한 장식에 불과해 보인다. 칼 안드레의 1969년도 작품 '구리, 마그네슘 합금 사각형'이다.

그런가 하면 표면에 거울을 붙인 높이 53㎝의 정육면체 4개가 사각형으로 배열돼 있는 로버트 모리스의 65년작 '무제'(거울로 된 입방체)도 있다.

뭔가를 만들기 위한 재료나 단순 장식품처럼 보이지만 이것도 작품이다. 어두운 벽면에 나란히 붙여놓은 청.황.녹색의 형광등 3개가 떨어져서 빛을 발하고 있는 댄 플래빈의 95년작 '무제'는 더하다. 그냥 형광등을 붙여놓고 불을 켜놓았을 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두가지다. 하나는 형태.색상.표면이 단순무비해 아무 공방에나 주문하면 똑같이 만들 수 있다는 점이요, 또 하나는 모두 현대미술사의 중요 흐름인 '미니멀 아트'를 대표하는 유명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미니멀 맥시멀-미니멀 아트와 1990년대 미술'전은 서구 미니멀리즘 대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비교, 감상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3월 24일까지).

미니멀 아트(Minimal Art) 혹은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란 60년대 미국 미술계의 흐름을 주도했으며 아직도 서구 미술계에 해당 작가나 그 영향이 남아있는 사조다. 작가의 감정을 격렬하게 표현하면서 50년대를 풍미했던 추상표현주의에 반발하며 등장했다.

종래의 미술사조가 무언가를 표현.전달하고 어딘가에 봉사하려고 했다면 미니멀리즘은 그와 전혀 다르다.'어떤 공리적 목적도 없이, 어떤 연상작용이나 의미.주장도 배제한 채,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예술'을 지향하는 것이다.

미술 역사상 가장 난해하고 공격을 많이 받았으며, 물의를 크게 빚은 사조로 꼽히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 출품작은 60년대 중반 미니멀리즘의 초기 대표작과 이후 거기에 영향을 받으면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90년대의 작품 등 35점.

풍자적인 사진 한점을 제외하면 모두가 조각 설치다. 회화 일색이었던 추상표현주의와 달리 미니멀리즘은 대부분 조각작품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로버트 모리스.칼 안드레.도널드 저드.댄 플래빈.솔 르윗 등 60년대 전성기 미니멀리즘의 대가들을 포함한 미국지역 13명과 독일.이탈리아.프랑스.영국.스위스.오스트리아.폴란드 등 유럽 7개국 15명, 독일에서 활동 중인 일본작가 1명 등 29명.

이번 전시는 98년 독일 브레멘 미술관이 기획한 국제순회전으로 독일.스페인.일본을 거쳐 이번에 한국에 왔다. 국내에 솔 르윗 등이 부분적으로 소개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대가급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서 감상할 기회는 드물었다.

부대 행사로 26일과 2,3월의 9, 23일 오후3시에 작품 설명회도 열린다. 관람료 성인 2천원, 청소년 1천원. 02-2188-6047.

조현욱 기자

*** 미니멀리즘이란

미니멀이란 용어는'최소화한다'는 말이다.작품에서 무언가를 재현한다거나 환영(幻影.illusion)이나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를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니멀리즘은 주관을 억제하는 엄격함, 도덕적 형이상학적 중립성, 명백함과 단순성을 추구한다.

회화의 경우 단순한 무늬를 반복배열해 벽지로 착각하기 쉬울 정도다. 조각의 경우 이번 전시작에서 드러나듯 철판.형광등.벽돌.공업용 페인트 등의 산업용 재료를 이용해 단순하고 획일적이며 반복적인 기하학적 형태를 보인다. 미니멀리즘을 재해석한 90년대 작품들도 거의 동일한 특징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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