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되는 유럽 위기 … 유로존의 운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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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독일 지갑 열어 소비시장 되면
고질병 재정적자 털고 재도약

비 온 뒤 땅이 더 굳는다. ‘복지 유럽’의 고질병인 재정적자가 이번 기회를 통해 해소된다는 시나리오다. 스페인·그리스 등은 이미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다. 위기가 오히려 기업가 정신을 자극하고, 이를 통해 유럽이 다시 과거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우려 속에서도 1분기 스페인 경제는 지난해 4분기에 비해 0.1% 성장했다.

하지만 FT는 이 시나리오에 대해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다. 1990년대 초 금융위기를 겪은 스웨덴은 유럽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국가로 성장했다.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도 이뤄냈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려면 독일의 역할이 중요하다. 독일인들이 지갑을 열어 유럽의 소비시장 역할을 해줘야만 다른 유로존 국가경제에 활기가 돌 수 있다.

7500억 유로 유럽안정기금 덕
위기 진정돼도 근본 해결 안 돼

유로존 문제가 진정은 되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못한다는 시나리오다. FT가 “가장 유력하다”고 평가한 이 전망의 핵심은 유럽연합(EU) 차원에서 마련한 7500억 유로(1120조원) 규모의 유럽 안정기금이다. 이 기금이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개별 국가가 약속한 재정감축안이 결실을 내면 시장의 불안은 수그러들 수 있다. 그러나 이게 전부다.

적자는 줄어도 성장은 못하고, 위기 해결책을 놓고 유로존 국가의 사분오열은 반복된다는 전망이다. 예컨대 유럽중앙은행(ECB)이 재정난을 덜어주기 위해 국채를 매입하면, 독일이 “중앙은행이 할 일이 아니다”며 비난하는 식이다. 역사도 이 시나리오를 뒷받침한다. EU는 늘 느렸다. 좋게 보면 점진적 변화고, 나쁘게 보면 굼떴다. 반면 시장은 지금 유로존의 과감한 변화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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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적 불안 등 속병 깊어
IMF 지원에도 금융위기로 번져

국제통화기금(IMF)과 EU 해법의 실패를 의미한다. 고강도 긴축의 부작용이고, 재정위기가 금융 불안으로 확산되는 시나리오다.

유럽 위기는 단순히 재정문제만은 아니다. 속병이 깊다. 스페인은 노동시장의 불균형(전체 실업률 20%, 청년 실업률 40%)이, 이탈리아에선 남북 간 경제격차가 심하다.

그리스는 탈세의 천국으로 불린다. 정치·사회적 불안도 해결하기 쉽지 않다. 진작부터 “그리스는 IMF가 돈을 퍼붓고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베트남 전쟁’ 같은 곳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사태가 이렇게 흐르면 재정위기는 금융위기로 번진다.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에 돈을 빌려준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게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16개국 중 일부 탈퇴·퇴출되면
그리스 파산 등 치명상 입어

살아있지만 차라리 죽은 것만 못한 상황이다. 유로존 16개국 중 일부가 유로 체제에서 탈퇴하거나, 다른 나라에 의해 퇴출당하는 결정이 나올 때 파국은 시작된다. 이쯤 되면 그리스는 파산이 불가피하다. 파산을 면하기 위해 채무 재조정을 하더라도 유로존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최근 독일에선 ‘질서 있는 파산’이란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로존은 해체나 탈퇴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 질서 있는 파산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달 “(유로의 실패는) 공동통화의 실패이자 유럽의 실패이고, 유럽 통합이란 이상의 실패”라고 말했다. FT는 “현실화되긴 어려운 얘기지만 예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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