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핀치의 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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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야말로 모던 세계를 사는 이들의 정신을 규정하는 핵심 패러다임이다. 문제는 '종의 기원'을 쓴 다윈의 진화론 증명에는 어설픈 구석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윈 자신도 이렇게 얼버무렸다.

"기나긴 지질학적 연대에 비해 우리 인간의 관점은 너무나 불완전하다. 우리는 그저 현재 생물의 형태가 과거에 비해 다르다는 것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다윈 당대에도 진화론의 핵심인 자연선택 이론의 약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다윈은 자연선택이 일어났음을 증명했다기 보다는 그것이 일어나야 함을 말했을 뿐이다."20세기 들어서도 사정은 별로 바뀐 것이 없다.

현대과학 저술의 고전 취급을 받고 있는 『핀치의 부리』(The Beak of The Finch)를 보면 한 유전학자의 탄식이 나온다.

"지금까지 야생집단을 대상으로 한 진화에 대한 관찰은 놀라우리만큼 적다". 진화론과 창조론을 둘러싸고 딱 부러진 결론이 없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놀랍도록 친절하게 쓰여진 『핀치의 부리』는 1970년대 이후 이뤄진 진화론과 관련된 새로운 관찰과정과 그것을 진행했던 과학자 부부의 삶에 관한 대중적 저술이다.

미시간대의 그랜트 교수 부부가 갈라파고스 섬의 핀치(참새의 일종)13종을 20여년동안 관찰해온 과정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담아내는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잡지 '더 사이언시스' 기자 출신의 저자가 진화론에 관한 최신 이론을 고수의 솜씨로 녹여낸 것이다. 물론 생물학을 전공한 뒤 신춘문예로 등단한 옮긴이가 번역에 들인 품도 높이 살만하다.

갈라파고스 섬은 다윈이 불과 5주동안 머물렀던 공간. 남미 옆의 극히 작은 이 섬에서 다윈은 핀치 몇마리만을 채집해 돌아왔으나 "내 모든 생각의 기원"이라고 말했던 진화론 탄생의 고향이다.

생각해보라. 거의 완전하게 고립된 공간, 그곳의 생물들은 다른 집단과 섞이지 않은 채 생장을 하니 자연 실험실로 그만이다. 이곳에 있는 13종의 핀치는 새까만 깃털에 까만 부리를 가졌고, 무게는 20g이 겨우 넘는다.

물론 책은 진화론을 옹호한다.옹호의 말은 아예 단언의 형태로 나온다. "진화는 화산만큼 격렬하고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 물론 핀치의 관찰을 토대로 한 결론이다.이를테면 핀치들은 "서로 닮았으면서도 놀라우리만큼 서로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다.

'선인장 핀치'의 경우 선인장 꽃가루와 씨를 먹으며, 거기에 알을 낳고 산다. 전혀 다르게 사는 흡혈귀 핀치도 있다. 부비새의 등에 올라 타 피를 빨아먹거나, 부비새의 알을 깨뜨려 노른자위를 먹고 산다.

희한하게도 채식 전문 핀치도 있다. 나무줄기의 껍질을 벗겨내 수액이 흐르는 관(管)을 찾는 도사들이다. 핀치 가계는 이렇듯 유별나게 분화돼 있는데, 각 종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부리의 형태를 발전.진화시켜온 것이다.

부리의 크기만해도 수십배가 차이가 날 정도다. 핀치가 1년생이기 때문에 1973년 이후 이곳에서 스무세대가 바뀌는 동안 '시간의 딸'인 진화의 과정을 관찰한 결론이라서 섣부른 문제제기가 어려울 정도다.

조우석 기자

『핀치의 부리』한권을 읽었다고 창조론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쉬 바꿀 것 같지는 않다.

외려 이 책은 자연과학에 대한 서구 과학자들의 헌신을 보여주는 감동 스토리로 의미가 있을게다. 제자가 번역한 이 책에 기꺼이 추천사를 쓴 서울대 최재천 교수가 "마치 전기물을 읽는 느낌"이라고 한것도 그런 맥락이다. 어쨌거나 퓰리처상을 탄 책이 어떤 종류인가를 보려 한다면 이 책은 추천서 맨 위에 놓여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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