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동물 300만마리 시대… 3집에 하나 꼴 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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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뱀.오리.돼지.악어.페렛.디스커스…. 동물원 이야기가 아니다.

슬그머니 우리 곁으로 다가온 이색 애완동물이다. 아파트.단독주택을 가리지 않고 전국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이 3백만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세 집에 한 집꼴이니까 애완동물 시대가 시작된 셈이다.

주위 눈치를 보느라 애완동물에게 성대.피임수술을 하던 시대는 지나고 있다. 애완동물 때문에 아예 집을 옮기는가 하면 애완동물 동호인 주택까지 들어서고 있다.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애완동물이 가족 구성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낯선' 식구와 색다른 재미에 빠져 사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서울 송파구 마천2동의 슬기(10.초등2)양 가족은 6개월 전 새 식구를 맞았다. 동물을 키우고 싶다던 슬기가 학교 앞에서 덜컥 새끼 오리를 사온 것이다. 동생이나 언니.오빠가 없어 외로워 보이던 슬기는 이 '꽥꽥이'를 키우면서 표정이 밝아졌다. 방안에 오리가 들어오면 화들짝 놀라던 엄마.아빠도 이제 꽥꽥이를 아들처럼 여긴다.

오리를 목욕시키고 정성스레 빗질하는 것은 슬기의 몫. 처음에는 방에서 함께 잤으나 털이 날리자 이제는 옥상에 집을 만들어 자게 한다. 꽥꽥이도 슬기를 누나처럼 따른다. 집밖으로 따라나가고 슬기가 학교 숙제를 하느라 같이 놀아주지 않으면 훼방을 놓는다.

서울 도봉구 창동 주공아파트에서 아버지.어머니와 사는 정영(7).건영(5)형제는 지난해 8월부터 햄스터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정영이는 새끼를 얻고 싶은 욕심에서 암컷을 골랐다. TV프로그램에 나오는 이름을 따 '햄톨이''햄순이'로 이름지었다.

형제는 먹이를 챙겨주고 일주일에 한번씩 상자 바닥에 톱밥을 깐다. 어머니 김점희(金點喜.32)씨는 "방을 어지럽히고 이불도 개지 않는 아이들이 햄스터는 동생처럼 돌보는 것을 보면 기특하다"며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여서 아이들이 더욱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말한다. 햄스터 때문에 아버지의 귀가 시간이 빨라진 것도 이들 가족이 얻은 뜻밖의 소득이다.

서울 반포본동 주공아파트의 김혜란(39)씨는 보름 전 같은 아파트 윤다혜(66)씨와 사돈을 맺었다. 기르던 애완견 '똘이'가 근처 동물병원을 찾았다가 윤씨의 암컷 몰티즈인 '보라'와 교미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자식처럼 키웠으니 사돈이나 다름없다"며 새끼를 낳으면 나눠 기르기로 했다. 김씨의 초등학생 아들.딸은 휴일이면 보라의 불러오는 배를 보기 위해 똘이를 데리고 윤씨 집을 찾는다.

민주당 김근태 고문은 정치권에서 이름난 애완견 애호가다. 군사정권 시절 지명 수배돼 경찰서나 파출소 근처는 얼씬거리지도 않았던 김고문은 10년 전 난생 처음 파출소를 찾아갔다고 한다. 기르던 애완견 '또또'가 발정기를 못 이기고 집을 나가 버려 실종 신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애완동물 때문에 생활을 바꾼 사람들도 드물지 않다. 서울 홍제동의 아파트에서 시베리안 허스키종 강아지 '피구'를 기르던 박성호(43)씨는 지난해 그린벨트로 둘러싸인 외발산동 단독주택으로 집을 옮겼다.

피구의 몸집이 커지면서 요란하게 짖어대자 이웃들의 항의가 늘어 견디기 어려웠다. 박씨는 "가족들이 피구와 너무 정이 들어 떼놓을 수 없었고 성대 수술을 받게 하기 싫었다"며 "피구가 심심하지 않도록 강아지를 한 마리 더 샀다"고 말했다. 그는 "개를 마음놓고 키울 수 있도록 동호인 주택도 들어서고 있어 형편이 맞으면 입주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사는 이주섭(29.회사원)씨는 보기 드문 어른 애완동물 매니어다. 결혼 2년차로 동갑인 부인과 둘이 살고 있는 그의 집은 작은 동물원이나 다름없다. 뱀 두 마리와 앵무새 네 마리,족제비와 비슷한 페렛 여덟 마리를 키우고 강아지 두 마리도 온 방안을 돌아다닌다.

이씨는 "지난해 5월부터 한 마리씩 들여놓다가 키우고 싶은 동물이 자꾸 늘어 대가족이 됐다"고 말했다. 처음 뱀을 보자 질색을 했던 부인도 요즘은 "가장 귀엽고 깨끗한 동물이 뱀"이라고 할 정도로 친해졌다. '페렛천국'이라는 인터넷 동호회를 운영하는 이씨는 앞으로 거미.장수하늘소 등 곤충도 키워볼 생각이다.

안장원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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