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재무장관 단독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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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28일(현지시간) 스페인 이에이드 지역의 라카이사은행의 자동인출기 코너로 한 남성이 들어서고 있다. 스페인의 주요 저축은행인 라카이사와 카하 마드리드는 이날 소규모 저축은행들을 인수합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이드 로이터=연합뉴스]

오후 6시30분. 스페인 마드리드의 알칼라 9번지에 있는 재무부 청사 2층의 엘레나 살가도 장관 회의실. “장관은 시간을 칼 같이 지키는 사람”이라던 비서의 말과는 달리 그는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늦었다. “하루 종일 회의가 있어 이제 겨우 끝났다”고 했다. 스페인 저축은행의 국유화에 따른 회의와 외빈 면담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테이블에 마주 앉은 그는 안정된 표정과 말투로 스페인 경제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지난 1분기 스페인 경제가 0.1% 성장했다”고 먼저 운을 뗐다.

-시장에서는 그리스에 이은 위기 국가로 스페인을 지목한다.

“우리는 그리스처럼 통계를 조작하지 않았다. 그리스의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00%가 넘지만, 우리는 그 절반 수준이다. 그리스는 2000년 이후 줄곧 적자를 냈지만, 우리는 2008년 이전까지 흑자였다. 무엇보다 스페인은 다변화된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이베르드롤라·텔레포니카·산탄데르은행 등 세계적인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왜 시장은 스페인 경제를 걱정하나.

“스페인이 유로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에 재정적자 폭이 큰 국가들이 상당수 있기 때문에 스페인이 영향을 받는 것뿐이다. 하지만 현재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유로화 안정조치가 발표돼 상황이 안정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실업률이 20%에 이른다. 해법은.

“최대 현안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건설업을 중심으로 실업자가 늘었다. 그러나 경제의 60%를 차지하는 서비스업을 개방하면 실업률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확대할 계획이다.”

-저축은행(카하) 부실 우려가 크다.

“45개 카하 중 20개 이상을 구조조정할 계획이다. 다음 달 말까지 관련 절차를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저축은행법을 바꿔 카하의 영업 범위를 넓혀 수익 기반을 확대하고 자본 조달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

-긴축이 더블딥(이중침체)을 부를 것이란 지적도 있다.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긴축이 성장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스페인 정부는 노동시장뿐 아니라 서비스 시장을 개혁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경제가 나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EU 재무장관 회의에서 ‘유럽안정기금’ 방안을 마련하는 데 12시간이나 걸렸다.

“그리스에 원조를 한 지 얼마 안 돼 공동의 메커니즘을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 개별 국가마다 상황이 다른데 영구적인 정책을 만들려다 보니 어려움이 따랐다.”

-힘들게 마련한 안에도 불구하고 왜 시장이 안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공동의 경제정책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개별 국가의 동의가 필요하다. 각국 의회가 이를 승인하기 전까지 시장이 동요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은 처음보다는 많이 안정돼 가고 있다고 본다.”

-제2의 금융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데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사람들은 지금의 위기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심각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번 위기는 2008년 금융위기의 부수적인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또 한 가지 유심히 봐야 할 점은 지금 위기를 초래한 이유가 유럽 국가들이 안고 있는 재정적자 때문이라는 점이다. 이는 오히려 유럽 경제의 펀더멘털을 더 건실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시장의 우려를 잠식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시장의 불신을 해결하기 위해 유럽 차원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2020년까지 신재생에너지를 기초로 한 유럽 장기 투자전략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재정이 방만한 국가에 대한 공동의 관리·감독기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미 규제는 시작됐다. EU 재무장관회담과 같은 회의를 바탕으로 방만한 재정을 운영하는 회원국에 대한 감시를 더 강화할 예정이다.

-다음 달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한국에서 열린다. 한국이 유럽 재정위기와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범세계적 차원의 금융체제 개편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 등 아시아 국가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런 논의 속에 유럽 지역의 금융 문제도 다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장관 회의실에는 전직 장관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초상화 속 장관들은 정장 차림이었지만 살가도 장관은 흰 티셔츠에 검은 면바지, 검은 재킷을 입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회의실을 빠져 나가는 그는 뛰는 듯 보였다.

 마드리드=김경진 기자



엘레나 살가도 장관은 …
스페인 넘버 2 …‘항상 끝까지 싸우겠다’ 좌우명

“항상 끝까지 싸우겠다(siempre peleo hasta final).”

엘레나 살가도 스페인 재무장관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호세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가 평소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가 얼마나 사파테로 총리와 ‘코드’를 맞추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살가도 장관의 영향력은 한층 강화됐다. 그래서 그는 공식적으론 제2 부총리지만 ‘스페인 넘버2’로 불린다. 작은 키에 마른 체형, 다소 연약해 보이는 외모지만 질문에는 ‘예’나 ‘아니요’로 분명히 답하는 거침없는 스타일이다. 경력도 화려하다. 마드리드 공과대학(산업공학)을 나온 후 마드리드 국립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웠다. 총무처 장관(2004년), 정보통신부 장관(2007년)을 거쳐 지난해 4월 재무장관이 됐다. 여성 재무장관으로서의 자부심과 사명감이 대단하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현실 적응이 뛰어나고 실용적인 부분까지 생각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경제 상황을 판단할 때 사람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고민합니다.”

요즘 그는 취임 후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의 비서는 “시간대별로 미팅이 잡혀 있어 다이어리에 빈 공간이 없을 정도”라고 일러줬다. 살가도 장관은 “바쁜 일정 중에서도 잠을 푹 자려고 노력한다”며 “요가와 산행을 통해 스트레스를 푼다”고 말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있다. 정통부 장관 시절 한국을 방문한 그는 한국의 오페라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젊었을 때부터 오페라를 좋아해 한때 마드리드 오페라 극장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테너와 소프라노들을 좋아한다”며 “한국에서 다시 오페라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도 친분이 있다. 그는 다음 달 4일 부산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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