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최승호 '회전문 속에 떨어진 가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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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회전문 속에서 가방을 놓치고

회전문 밖으로 밀려나와 가방을 본다

이것은 죽음의 한 경험인가

회전문 밖으로 밀려나온 여기가 후생(後生)이라면

가방 든 시절이 전생의 이승이었단 말인가

회전문 밖에서 떨어진 가방을 들여다본다

내용물은 별것도 아니지만

나 없으면 육신의 껍질이나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지금 잃는다면 아쉬움도 꽤 따를 것이다

장례식에는

산 자들이 억누르는 슬픔의 총체보다 더 큰

죽은 자의 고요한 슬픔이 뒤따른다

-최승호 (1954~) '회전문 속에 떨어진 가방'

회전문에 대하여, 가방에 대하여. 회전문은 안인가 밖인가? 안에 들어와도 밖인 것 같고 밖에 나와도 안인 것 같다. 나는 지금 나오는 중인가 들어가는 중인가.

가방이란 무엇인가. 그냥 사는 사람은 가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방은 어디 가는 사람이 들고 있는 것. 가지 않는 사람은 가방을 내려놓는다. 어디론가 가고 있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 그러나 어디론가 가고 있는 사람이 마침내 이르는 곳은 죽음?

김화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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