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통합 1년반 유예] 건보혼란 일단 정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정치권이 건강보험 재정 통합을 1년6개월 유예함에 따라 이를 둘러싼 사회 혼란은 일단 가라앉았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유예기간 중 자영업자 소득파악률을 크게 높이고, 단일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마련해야 하는 힘겨운 과제를 안게 됐다.

정부는 직장과 지역의 재정을 합치는 것을 전제로 지난해 5월 마련한 건보재정 종합대책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1년6개월 동안 직장과 지역의 살림살이를 따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2006년 통합재정 흑자 실현'이라는 당초 목표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건보료 인상 폭과 방식을 변경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직장.지역 구분 없이 2006년까지 건보료를 매년 8~9% 올리기로 했다. 재정을 통합하면 상태가 좋지 않은 직장 재정이 지역에서 돈을 그냥 갖다 쓸 수 있어서 직장.지역의 건보료를 똑같이 올려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유예기간에는 이것이 불가능해진다.

실제로 복지부의 추계에 따르면 올해 지역은 당기흑자 3천억원, 직장은 당기적자 7천억원이 예상된다. 담배부담금을 지역건보와 직장건보가 같이 쓸 경우 지역은 당기수지 균형, 직장은 3천억~4천억원 당기적자로 바뀐다. 담배를 팔아 적자를 다소 줄인다 해도 직장재정이 워낙 안좋기 때문에 직장의 건보료가 계획보다 1~2% 이상 올라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복지부 박하정 보험정책과장은 "유예기간 중 자영업자 소득파악률을 높이고, 건보료 부과체계를 단일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면서도 "단일 부과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사용이 늘면서 소득파악률은 2000년 27~28%에서 지난해 34%까지 올라갔다. 유예기간 중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을 듯하지만 재정분리론자들이 요구하는 수준(최소한 60~70%)에는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소득파악률과 단일 부과체계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1년6개월 뒤 건보재정의 운명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완벽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면 통합은 불가능하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최대한 근접한 잣대를 만든다면 통합할 수 있다.

연말 대통령선거 결과 역시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재정뿐 아니라 조직까지 분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실제로 조직분리 작업에 착수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민주당이 승리하면 2003년 하반기에 재정을 통합할 것 같다.

신성식.김정하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