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복 교수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왜 도덕적 의무감 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 글을 써오는 동안 많은 사람이 '노블레스 돈먹기' '노블레스 썩기'라는 편지와 전화를 해왔다. 이 정권 들어 지난 수년새 윗사람들의 도덕적 해이와 권력적 부패가 도시 어디까지인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세계화의 속도는 너무 리얼하고, 리얼한 것만큼 세계화는 보편적 잣대로 투명성을 요구하는데 우리는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고 개탄한다.

*** 정치권 부패 갈수록 파급

노블레스는 위층에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위층도 단순한 위층이 아니라 일반사람들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높은 '신분(status)'을 가진 사람들이다.

물론 이는 서구에서 말하는 '노블레스'다. 특별히 구분되고 귀속되는 신분이랄 것이 없는 우리 사회에서는 제도적 지위가 높고 제도적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이면 다 노블레스라 지칭할 수 있다. 제도적 지위는 정부제도만이 아니라 학교.언론.기업 등 민간제도도 다 포함된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경우 아직까지 현실적으로 가장 큰 결정권과 영향력을 지닌 정부며 정치권이 그 주류를 이룬다.

정부.정치권에서 뭘 결정해주지 않으면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사회다. 그만큼 거기에 막강한 힘이 몰려 있고, 몰려 있는 것만큼 정부며 정치권이 부패하면 다른 모든 부문도 따라서 부패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아직도 덜 분화되고 덜 다원화돼 있다 할 수 있다.

오블리제는 이 위층에 있는 사람들의 도덕성이다.

그들의 도덕적 양심이며 도덕적 행동이며 도덕적 의무감이다.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을 양심에 따라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 도덕적 양심이다.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고 해서는 안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 도덕적 행동이다.내 지위에 부여된 의무, 내 지위에서 수행해야 할 책임을 있는 힘을 다해 완수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감이다.

선생이면 선생으로서, 기업인이나 장관이면 기업인 장관으로서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이 도덕적 의무감이다.그 의무와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선생은 선생이라는 자리를 욕되게 하지 않는다. 그때 기업인도, 장관도 그들의 지위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다.

자신 또한 가장 떳떳해진다. 자기와 자기 자리를 부끄럽고 욕되게 만들지 않는 것, 그것이 오블리제다.그만이 아니다. 사회에 대한 남다른 충성심과 희생정신이 또한 오블리제다. 자기 나라가 백척간두에 섰을 때 제일 먼저 '목숨을 거는 것'이 오블리제며, 자기 사회가 딜레마에 봉착했을 때 그 해결을 위해 제일 먼저 어려운 짐을 지는 것이 오블리제다.

일반 국민은 그같은 도덕성이며 충성심, 그리고 희생정신을 갖기도 어렵고,가지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 일반국민은 위층만큼 사회적 혜택을 받은 층이 아니다.

그들은 권력과 부 위신(威信)이라는 사회적 희소가치를 위층 사람들만큼 갖지도 못했고 가질 수도 없다. 희소가치 점유의 면에서 그들은 결코 수혜층이 아니다. 수혜층이 아닌 것만큼 강한 충성심도 남다른 희생정신도 갖기 힘들다. 수혜층이 못되는 것만큼 위층처럼 그렇게 도덕성이 강요될 이유도 없다. 그만큼 부패할 소지가 적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일반국민을 향해 충성심과 희생정신을 강조하고 도덕 재무장을 역설한다. 그게 아니라도 우리는 상층보다 중하층 사람들이 훨씬 더 도덕적이다. 혜택받는 층보다 혜택받지 못하는 층이 더 충성심도 강하고 희생정신도 강하다. 세금도 그들이 훨씬 더 정직하게 내고 병역의무도 그들이 훨씬 더 충실하게 이행한다. 나라가 어려울 때 가난한 주머니에서 금반지를 내는 것도 그들이고, 휘어진 허리에 봉사의 등짐을 더 지는 것도 그들이다.

*** 분열.갈등만 가득 찬 나라

우리 위층, 특히 우리 권력층만큼 후안무치도 드물다. 그렇게 권력을 탐할 수 없고 그렇게 돈에 미칠 수가 없다.

우리 권력층만큼 '게이트'도 많고 '리스트'도 많은 층이 있던가. 그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잃으면 국정은 난맥상이 되고 국가는 난파선이 된다. 지향(志向)도 없고 정향(定向)도 없고 좌표(座標)도 없고 지표(指標)도 없는 사회가 된다.오직 부패, 오직 분열.갈등만 가득 찬 나라가 된다.그래서 다시 노블레스 오블리제다.

송 복 <연세대.정치사회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