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오기싸움… 멍드는 건강보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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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야의 명분 싸움 속에 건강보험 재정이 멍들어가고 있다. 재정 통합 논란과 함께 정치권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연간 6천6백억원에 달하는 담배부담금 문제다. 여야는 담배부담금을 1백50원(현행 2원)으로 올려 건보 재정에 투입하자는 데는 의견을 같이했으나 재정 통합 문제가 꼬이면서 담배부담금마저 처리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부터 담배부담금을 도입하는 것을 전제로 재정 대책을 세웠기 때문에 하반기에만 벌써 3천여억원의 추가 부담이 생겼다. 복지부 관계자는 28일 "솔직히 재정 통합이야 결론이 어찌 되든 상관없다. 하지만 연간 6천6백억원에 달하는 담배부담금이 계속 지연되면 재정은 어쩌란 말이냐"며 한숨을 쉬었다.

◇ 재량권 없는 양당 총무=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건보 재정 통합을 한시적으로 유예하자는 원론에는 사실상 합의해 놓고 있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에서도 "재정 통합의 결정권을 차기 정권으로 넘기자"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유예 기간 문제에선 좀처럼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27일 총무회담에서도 민주당 이상수(李相洙)총무와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총무는 각각 1년과 2년 유예안을 놓고 평행선만 달렸다. 이는 정치적 사안과 달리 정책적인 문제가 되다 보니 총무들의 재량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4자회담을 마치고 민주당 박종우(朴宗雨)정책위의장은 "잘 나가다가도 이재오 총무가 휴대폰으로 통화하고 나면 자세가 다시 강경해지더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각당 강경파의 입김이 거세 지도부가 끌려다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수 총무는 28일 "1년6개월 연기도 고려해 볼 수는 있지만 우리가 먼저 제안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먼저 2년안을 굽혀야 즉각적인 재정 통합을 주장하는 당내 강경파들을 설득할 명분이 생긴다는 계산이다. 이상수 총무는 당내 강경파들에게서 "서울시장 출마 준비를 서두르려고 협상을 대충하려 한다"는 공격까지 받고 있다.

반면 이재오 총무는 "조직까지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는 복지위 소속 의원들을 겨우 달래 2년 유예안을 만들었는데 더 이상 양보는 곤란하다"고 펄쩍 뛰고 있다. 이를 두고 현행법상 3일 뒤면 재정 통합에 들어가야 하는데 양당이 "먼저 손은 못 내밀겠다"는 식의 오기를 부린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안이한 당 지도부=여기에다 민주당의 신경은 당내 경선 일정에 쏠려 있다. 그러다 보니 당 중진들이 건보 문제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도 "급한 건 여당이지 우린 급할 게 없다"며 협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태도다.

심지어 양당은 내년 초에 건보 대란이 발생할 경우 "한나라당의 단독 처리로 가져온 국정 마비"(민주당),"여당의 고집 부리기로 빚어진 혼란"(한나라당)이라는 주장을 펴며 책임 떠넘기기 공방을 벌일 태세다.

김정하 기자

<건강보험 재정통합 논란 일지>

4.27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 등 23명이 건강보험 재정분리법안 국회 제출

5.7 한국노총.경총 등 6개 단체 '건보 재정분리 청원서' 국회 제출

6.18 김원길 보건복지부 장관,"재정통합해도 5년간 직장.지역 구분계리"

10.26 재정분리법안 국회 보건복지위 상정,법안소위 회부

11.7 한나라당 재정분리 당론 확정

12.19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재정분리안 찬반토론.

12.20 여야 총무 1차 협상 실패.김홍신 의원 반발로 한나라당 표결 무산

12.21 총무 2차 협상 실패(1년 유예안에 의견 접근했으나 공단운영비 분리문제로 결렬)

12.24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 상임위 교체 후 재정분리안 단독처리

12.26 양당 4자회담에서 한시적 유예에 원칙적 합의

12.27 총무 3차 협상 실패(민주당 1년 유예.한나라당 2년 유예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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