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환씨 "여인천하, 나 없으면 무너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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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SBS '여인천하'에서 가장 안쓰러워 보이는 사람 중 하나가 중종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권력자의 모습은 없고 정국 공신들의 눈치를 보며 여인네들의 지략에 휘둘리는,우유부단하고 유약한 모습의 왕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종환. 36세. 중종 역을 맡은 이 연기자의 중종에 대한 사랑은 유별나다. 여인들의 틈바구니에서 조금이라도 강한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목소리 톤을 낮추고, 눈에도 힘을 준다고 한다.

"어휴, 답답합니다. 중종은 우유부단한 인물만은 아니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연기자는 한 역할에 깊이 빠지다 보면 그 인물의 마음까지도 읽을 수 있어요. 중종은 정치적 줄다리기를 기막히게 한, 매우 머리가 좋은 왕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마치 조선시대 실제 인물과 얘기하는 것 같다. 여기까지 말하고 자신도 이상한지 "내가 왜 이러지…"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드라마 '명성황후'에서 고종 역을 맡은 탤런트 이진우에게도 가끔 전화를 걸어 동병상련을 나눈다고 한다.

'여인천하'의 인기 비결 중 하나가 강수연.전인화.도지원의 화려한 삼각 편대 외에도 최종환과 같은 탄탄한 연기력을 가진 연기자들의 뒷심이다. 사실 그는 김재형 PD가 처음부터 탐냈던 연기자였다. 가장 먼저 캐스팅된 인물 중 하나도 그였다.

그의 캐스팅에 얽힌 일화가 있다. 지난해 여름 등산을 하러 갔을 때였다. 산 초입에 앉아 있던 한 할머니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나랏님 오시네…"라며 넙죽 절을 하는 것이었다. 어이없어하며 집에 돌아온 다음날 김재형 PD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중종 역을 맡아야겠네…."

그는 현재 '여인천하'외에도 MBC의 '전원일기'에 5년째 출연하고 있다. 전형적인 농군 역이다. 농군과 임금, 이 신분의 간극을 그는 연기력으로 멋지게 극복해 내고 있다.

"연기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닙니까. 동료들이 얼마나 부러워 하는데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낼 수 있는 게 그의 장점이다. 1993년 MBC 공채로 입사해 지금까지 킬러('승부사'), 인민군 대장('백야'), 거지('왕초') 등 개성 강한 역할을 두루 거쳤다.

때문인지 그에게선 자신감이 강하게 묻어 나온다. 서울예대를 졸업하고 뮤지컬 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그가 TV로 전향한 것도 그의 자존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역인데도 자꾸 주연 자리가 당시 유명 연예인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싫었어요. 그래서 과감히 진로를 바꿨죠."

그는 미래에 대해서도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최고의 연기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가 실제 중종이었다면 매우 강력한 왕이었을 것이다.

글=이상복,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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