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논단] 이슬람 개혁 위한 압력 강화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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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오사마 빈 라덴이 9.11 테러를 일으킨 주요 목적 중의 하나는 이슬람과 서방간의 충돌을 격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테러는 빈 라덴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불러왔다. 아랍권에 이슬람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을 촉발시킨 것이다.

그동안 온건파의 주장은 극단주의자들의 목소리에 가려져 왔으나 테러를 계기로 아랍 언론들의 주목을 받게 됐다. 온건파들은 미국에 대항해 성전(聖戰)을 벌여야 한다는 빈 라덴의 주장을 반박하고, 이슬람교는 선량한 사람들의 죽음을 결코 합리화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슬람 성전인 코란에 자살 공격을 정당화하는 구절이 있는지는 오랫동안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여성들의 권리에 대한 코란의 가르침에 대해 해석이 분분하며, 학자들은 코란이 은행의 이자 부과를 금지하는지에 대해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분명치 않은 정.교 분리는 이슬람 해석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정치세력들이 코란의 가르침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민주적 가치체계에 맞춰 이슬람을 현대화하고 올바로 해석하려면 열린 정치와 번영된 경제가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랍 정부들이 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들 정부는 대부분 전제적인 통치체제로 인해 경제 번영과 민주주의 발전에 실패했다.

몇몇 아랍 정부들은 1960년대와 70년대의 좌익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이슬람 극단주의를 의도적으로 지원했다. 그 후 그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주장을 일부 수용하는 한편 이들을 억제하는 모순적인 접근 태도를 보여왔다. 아랍 정부들은 80년대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항해 성전의 기치 아래 전사들을 보냈다. 그러나 전사들이 귀국해 정부를 성토하자 탄압했다.

아랍 정권들은 스스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변화를 위해서는 서구의 도움과 함께 압력이 필수적이다. 국제사회는 금융지원을 수단으로 이슬람의 경제.사회 개혁에 일조할 수 있다. 서방 정부들은 또 아랍.이스라엘 갈등과 같은 지역분쟁 해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들 분쟁은 급진주의를 야기하고,극단주의자들에게 이슬람과 서구의 충돌로 비쳐지고 있다. 특히 서방 국가들은 아랍 동맹국들에게 내부개혁에 나서도록 압력을 넣을 수 있다. 서구 국가들은 이 점에 무관심했다. 그들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등 아랍 정부들의 인권 침해를 방관했다.

또 알제리 군사정부가 91년 의회 선거 결과를 힘으로 무력화했을 때도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다. 현재 튀니지.이집트.시리아의 온건파와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탄압이 국제적 우려를 낳고 있다. 이들 국가가 서방의 경제.정치적 도움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려스런 사태를 개선하기 위한 서방의 압력은 전혀 없다.

9.11 테러는 이슬람권에서 온건파들의 입지를 강화시켜줘야 할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아랍 정부와 서방은 이 기회를 활용해 이슬람과 서방 모두 이익이 되도록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 이것만이 급진주의와의 대결에서 효과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파이낸셜 타임스 12월 28일자 사설>

정리=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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