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출판·실용서] '나의 아버지 모택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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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마오쩌둥(毛澤東)의 평전과 활약상을 다룬 책은 많지만 이 책의 특징은 단연 마오의 친딸이 직접 아버지를 그리며 썼다는 점이다.

당연히 마오 개인의 품성과 자녀 교육 방법, 그리고 마오와 함께 지냈던 가정 생활 등 '사람 마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덩샤오핑의 딸 덩용이 쓴 덩샤오핑 평전이 문화대혁명을 위주로 덩의 정치적 실각과 재기 과정 등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가정사 위주로 서술된 이 평전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저자의 가족 내 위치다. 마오가 43세 때 둘째 부인 허쯔전(賀子珍)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는 어린 시절 마오가 어머니와 헤어지게 되면서 장칭(江靑)을 계모로 두게 된다.

마오의 딸임에도 이름이 리민(李敏.64)인 이유는 중학교 입학 때 마오가 자신이 대장정 때 쓰던 가짜 성을 붙여 이름을 지어줬기 때문이다.

마오와 관련된 얘기가 주를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이 평전의 큰 틀은 그리운 생모-착한 딸-자애로운 아버지의 삼각 구도다.

절대권력자인 마오가 자녀들에게 "어디서든 절대로 내 친자식이라는 말을 하고 다녀서는 안된다"고 했다는 에피소드는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다.

아들과 딸이 병원에 입원할 때도 특별 대접을 받지 못하도록 가명을 쓰게 했던 것 등 마오의 엄격한 가족 관리가 눈에 띈다. '대통령의 아들'이 항상 수난을 당하는 국내 상황과 묘하게 대비가 된다.

그러나 저자는 아버지가 자녀에게 교육적이라고 판단되면 농촌이나 공장 시찰을 나설 때 대동하고 갈 정도로 자애로웠음도 잊지 않고 있다.

중국 현대사를 얘기할 때 문화대혁명은 빼놓을 수 없다. 이 평전도 2권 후반부는 문혁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문혁 자체는 중국 현대사의 불우한 일이며 "4인방이 타도되었을 때 너무 기뻤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마오에 대한 시선은 따뜻하기 그지없다.

마오가 혁명 성공 후에도 중단없는 계급투쟁을 내세우며 문혁을 지시했던 이유를 소련의 스탈린주의에서 벗어나려던 시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문혁 기간 중 아버지는 내내 고독하고 쓸쓸해 보였으며 또한 매우 모순되고 복잡했다"고 회상하고 있다. 반면 문혁의 문제점은 그의 계모 장칭에게 모든 혐의를 돌리고 있다.

글은 1976년 9월9일 마오의 사망으로 끝을 맺는다. 저자는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나에게 '자오자오야'라고 어릴 적 이름을 부르며 손을 꼭잡았다. 그것이 우리 부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고 아쉬워한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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