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천안함 사태 위기 대응, 이제부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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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대북 담화가 보다 효율적으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교한 로드맵에 따라 시간적인 연결고리를 지닌 가운데 추진돼야 한다. 이는 한반도에서 긴장과 위기를 조절하는 흐름을 북한으로부터 뺏어오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위기는 포물선과 같은 지속 주기를 지닌다. 그동안 북한은 자신들이 필요한 시기에 위기를 조성하고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는 대화 정국을 유도해내는 행태를 반복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심리적 압박감을 고조시키면서 긴장의 끈이 늦춰지는 시기에 이를 공략하는 전술을 취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남측이 한반도 정세의 칼자루를 쥐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천안함 사태에 대응하는 조치(특히 안보·국방상의 대안)의 상당수는 실제 실행을 위해서는 일정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유념해야 할 것은 이러한 준비 기간 동안 우리 사회가 품었던 단호한 의지가 희석될 위험이 있으며, 북한 역시 이를 공략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현 시점부터 우리 자체적으로 가능한 조치들의 조기 시행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한편 북한을 잠재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세력들과의 외교적 거래 수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현재 거론되고 있는 대북 심리전 수단의 재전개 및 운용은 우선적으로 몇몇 지역부터 조기 실시하고, 준비되는 수준에 따라 그 범위를 넓혀가는 방식으로 진행됨이 타당하다. 북한의 아픈 곳을 가장 적기에 건드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서해상에서 주요 해상무기 시범을 보이거나 자체적으로 대잠·초계훈련을 실시하는 것 역시 검토할 가치가 있다. 이러한 조치의 조기 시행은 북한에 대해 유사한 수법이 결코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각인시키는 동시에 우리 국민과 군에 대해 천안함 사건은 극히 예외적인 것이며 우리의 능력은 충분히 북한을 압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 유용하다. 남측이 자체적으로 시행한 조치가 한·미 혹은 국제 차원의 대북 압력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끊임없이 북한에 곤혹감을 안겨줄 수 있어야 한다.

정부와 국민 간의 소통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 비록 논리의 비약과 무책임한 상상력으로 가득 찬 유언비어나 설이라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한 국론의 분열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2년 전에 이미 경험했다. 정부의 조사 결과를 부정하거나 폄훼하는 설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차분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각종 대북 조치의 구사에 있어 가능한 모든 이들을 끌어안고 그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여론수렴의 노력 역시 뒤따라야 한다.

현 시점부터 천안함 정국에 대한 일종의 ‘출구전략’도 수립해 놔야 한다.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한국의 최종적 목표가 어떤 것이며, 어떠한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상황을 종결 지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북한과 국제사회에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출구전략’은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발생할 수 있는 국제적 거래의 여지를 사전 차단하는 한편 사태 해결의 주도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위기를 조장하는 측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상황이 자신의 의도대로 흐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거센 역풍에 노출되는 결과다. 이제는 북한에 보여주어야 한다. 자신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큰 실수를 했는지, 또 한국 사회가 동요하기는커녕 평정심을 유지하면서도 치밀하고 집요한 대응을 해나가는지를 말이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된 진정한 위기관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차두현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