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연인' 디트리히 부활… 독일서 추모 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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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각선미를 뽐내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이자 은막의 여우(女優)로 92년 사망한 마를렌 디트리히가 27일로 탄생 1백주년을 맞았다.

마력적인 섹스 심벌로서, 차가운 이지적 분위기, 고혹적인 얼굴과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로 30년대 남성들의 심금을 울리던 디트리히는 탄생 1백주년을 맞아 그녀가 묻혀 있는 독일 베를린에서 화려하게 되살아나고 있다.

베를린에선 여러 가지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베를린 영화박물관은 내년 2월까지 '영원한 젊음'이라는 주제로 디트리히에 대한 특별전시회를 개최한다.

베를린의 명소인 프리드리히 슈타트팔라스트 극장에서는 그녀를 추모하는 특별무대가 마련되며 MDR 방송에서는 29일부터 이틀간 '마를렌 디트리히… 머리부터 발끝까지'라는 주제로 특별방송이 나가는 등 다양한 추모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디트리히는 소위 '요부(femme fatale)'로 불릴 만큼 당대 뭇 남성들의 우상이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할리우드의 대스타 게리 쿠퍼, 프랑스 영화계의 자존심인 장 가뱅 같이 여자들에게 군림하기 좋아하던 권위적 남성들도 그녀의 매력 앞에선 무릎을 꿇고 열렬한 팬이 됐다.

할리우드로 건너가 32년 영화 '금발의 비너스'에서 남성정장을 하고 나타난 이후 남장차림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로 각인됐고,그녀는 세계 은막계에 부동의 여스타로 군림했다.

그러나 무대 뒤편에 감춰진 그녀의 인생은 영화만큼 화려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에 반대하며 미국 국적을 취득해 미군 위문공연에 나섰다는 이유로 오랜 기간 고향인 독일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디트리히는 공연을 위해 수많은 성형수술을 받았고 예고없이 들이닥치는 사진사들을 용서하지 않을 만큼 완벽주의자였다.

그녀는 92년 5월 6일 파리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신병을 비관해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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