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대통령 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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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카메라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줄을 지나 거의 차에 다다랐을 때 한두 번의 불꽃이 내 왼쪽에서 팍, 팍 하고 터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돌아서면서 '무슨 소리지?'라고 물었다.

그 순간 경호책임자인 제리가 나를 리무진 뒷좌석에 밀어넣고 내 위를 몸으로 덮쳤다. 그때 등 뒤쪽에서 믿을 수 없는 아픔을 느꼈다. 내가 이제까지 겪은 것 중 가장 괴로운 고통이었다. 나는 '제리, 자네가 내 갈비뼈를 부러뜨린 모양이야'라고 말했다."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이 취임 초인 1981년 3월 30일 힝클리라는 25세 청년으로부터 저격당했을 때의 상황을 묘사한 회고록 구절이다. 레이건이 느낀 통증은 경호원의 압박 탓이 아니라 이미 심장 가까이 박혀버린 총알 때문이었다.

이날 레이건에게 발사된 총알은 모두 6발. 공교롭게도 경호팀은 건축업자 모임에 연설하러 나갈 대통령에게 평소와 달리 방탄조끼를 권하지 않았다. 워싱턴 힐튼호텔내 행사장에서 대통령 전용차까지는 30걸음에 불과한 거리였기 때문에 마음놓았던 것이다.

레이건 경호팀의 실수는 한차례 더 이어졌다. 암살기도 6개월 뒤 한 사나이가 승용차로 백악관 서북쪽 문을 통과하려 했다. 경비원들은 그가 차량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렸기 때문에 출입증을 가진 것으로 오인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힝클리와 마찬가지로 정신병 전력이 있던 이 남자는 동행한 가족 3명과 함께 백악관 경내를 어슬렁거리다 10여분 만에 체포됐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얼굴과 눈.손을 감시하라'는 경호원 세계의 기본수칙이었다. 그러나 1901년 매킨리 미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이 수칙은 빛을 잃었다. 당시 암살범은 경호원들이 주목하던 털보와 거구의 흑인 사이에 서있던 순진하게 생긴 무정부주의자였다. 예나 지금이나 대통령 경호에서 방심은 금물이다.

아내 살해 용의자가 벤처사업가로 변신해 김대중 대통령에게 기술시연을 하고, 청와대에도 초대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는 동선(動線)과 만날 사람을 미리 점검하는 게 당연하다.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박상범씨도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다"고 개탄했다.

사태를 뜯어보면 경호실만이라기보다 국정원.경찰 등 시스템 전체가 문제였다는 느낌이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을 망신시키고 잠재적 위험에 빠뜨린 기관들이 서로 제 탓이 아니라고 뻗대는 풍경이다.

노재현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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