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6.9% 하락하는 동안 원화가치는 12.8%나 떨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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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한국에선 주식시장보다 외환시장의 위험도가 커질 것이다.”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25일 ‘천안함 사건의 영향’이란 보고서를 통해 내린 결론이다. 실제로 유럽의 재정위기와 천안함 사건이 금융시장에 악재로 작용한 이후 주식시장보다 외환시장이 더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원화가치는 지난 18일 이후 4거래일 동안 103.4원(9%) 하락하며 달러당 1250원으로 떨어졌다. 이 기간 중 코스피지수가 5% 밀린 것과 비교하면 하락폭이 더 크다. 원화가치가 주가보다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주가가 한국 경제나 기업 실적에 영향을 받는 반면 원화가치는 국가 위험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원화가치는 재정위기의 진원지인 유로존 국가의 유로화보다 더 많이 떨어진 상태다. 2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이후 유로화 가치는 달러화 대비 6.9% 하락한 반면 원화가치는 12.8%나 떨어졌다. 다른 나라와 달리 유럽의 재정위기와 천안함 사건이라는 두 가지 악재가 겹쳐 일어났기 때문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장민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원화가치가 다른 나라 통화보다 더 많이 떨어진 것은 천안함 사건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가 추가로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남북 간의 긴장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한국투자증권 전민규 이코노미스트는 “시장 참여자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발을 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원화가치가 어떻게 변동할 것인지 전망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남북 간에 또 다른 돌발 사건이 터진다면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SC제일은행의 오석태 상무는 “심리가 안정된다면 원화가치가 1100원대로 다시 오를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돌발 변수에 따라 1300원대로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경제적 측면은 아직까지 좋기 때문에 대외 여건 불안이 해소되면 원화가치도 회복될 것”이라며 “다만 단기간엔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외환위기로 커지는 것을 막으려면 정부가 외채 상황과 외화자금 동향을 철저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럽의 재정위기나 남북 간 긴장을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내부의 문제로 새로운 악재를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또 대외적으로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는 것을 알리고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잘 관리할 필요성도 있다(금융연구원 장민 실장). 한편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이날 원화가치가 장중 달러당 1270원을 돌파하자 “하락폭이 예상보다 상당히 크다”며 “필요하면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배·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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