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과 전망-문학] 문화권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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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문학권력 논쟁이 문단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문학권력이란 무엇인가. 어느 작가라도 자신의 작품을 싣고 출판하고픈 문예지와 출판사, 누구든 그로부터 평가를 받고 싶은 문학평론가이며 타고 싶어하는 문학상이다. 문학의 '권위'로 통하며 한국문학의 질을 끌어올리고 시대에 늘 깨어있게 하던 이런 문학관리 체제 혹은 제도가 '부패한 권력'으로 공격받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일부 소장 평론가들이 문단의 기성 권위를 용감하게 비판하면 소위 '자객(刺客)'으로 치부됐다. 문단의 질서와 평화를 깨뜨리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 되어 문단에서 조용히 퇴출당하거나 기성 권위에 포섭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2000년대 들면서 '논쟁'으로 대접,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는 물론 기성의 문학 권위가 잘못 운용돼 타파해야할 '권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비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권력에 대한 비판은 출판 상업주의가 문학의 권위를 '부패한 권력'으로 가차없이 전락시키고 있는 상황에서는 계속,가열차게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비난 받는 쪽에서는 '아프다'는 비명도 제대로 못지르는 형국이다. 때문에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것은 '문학권력 논쟁'이라기 보다 '부패한 문학권력 비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부패한 문학권력에 대한 권성우씨의 계속된 비판에 대해 문학평론가 남진우씨는 "독설과 언어 폭력은 냉소의식과 열등감의 소산""자기 무덤을 파는 자들의 동맹자 역할"등이라며 예의 '자객'수준으로 비하하며 반박했다.

이에 다시 권씨는 "심미적 비평이 한순간 기괴한 공격성으로 돌변하는 카멜레온적인 이중성"이라 공박하고 있다. 이같이 본질을 벋어나 있음은 물론 예의나 형식도 못갖춘 설전을 논쟁으로 볼 수는 없다.

문학권력 비판의 본질은, 작품을 엄선해 문예지에 싣고 상을 주고 출간해 독자들과 의미있게 소통시켜야하는 문학평론이 부패했다는데 있다.

곧 출판 자본에 예속된 평론이 더 낫지 않은 작품에 최고라는 '권위'를 주는데 있다. 가짜 상품에 유명 상표를 달아 팔듯이. 때문에 기성의 권위를 누리고 있는 평론가들이 문학권력 비판의 주 타깃이고 이미 그들은 한번씩 그 권위에 도전을 받았고,모든 기성 권위와 가치가 해체되고 다원성을 추구하는 추세에 따라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출간되고 있는 문예지는 1백여종이 넘는다. 이 중 10여개 남짓의 문예지만이 문단의 대표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들 문예지는 그 '권위'로 하여 작품을 엄선해 실을 수밖에 없고 그래야 그 '권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작품의 엄선을 위해 편집 위원 혹은 편집 동인이 있는데 이들이 작품 선정에 있어서 문학적 잣대가 아닌 상업적.정실적 잣대를 갖다대고 있다는 비판이다.

권위 있는 문예지들은 자체적으로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수상 작품집은 곧바로 출간되어 그만큼의 문학적 권위로 독자들에게 의심없이 다가가게 된다. 이런 문학상 선정 기준마저도 문학성이 아니라 어떤 작가,작품이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느냐가 우선시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래 출판 상업주의가 문학을 죽이고 있다는 비난이 나온다.

선배의 평론 활동이 후배에 의해 열려진 장에서 검증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때문에 문학권력 비판은 평론가의 양심과 줏대,그리고 평론의 염결성을 한층 요구할 것이다.

그것만이 문학권력의 부패를 막아 영원한 권위로 남게할 것이다. 나아가 비난이 들어오면 거기에 흔쾌히 반론을 펼칠 단계로 들어설때 문학권력 비난은 논쟁으로 발전하고 그런 논쟁이 분분해야 한국문학 작품의 질과 다양성,비평의 수준을 높이고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미당 서정주 시인과 미당문학상에 대한 논란과 소설가 이문열씨의 현 정국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과 급기야 이씨의 작품 장례식도 문학권력 비판과 맥락을 같이한다. 문학.문단 내적인 힘이든,사회적인 영향력이든 그것이 권위인지 잘못된 권력인지 따지자는 것이다.

그래 문학은 무엇이고,문학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고,어떤 역할을 해서는 문학 자체를 망친다는 문학의 자기 고백이자 영역 설정으로까지 문학권력논쟁은 나아가야 한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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