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반응] 일본 "엄청난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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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일본 국내는 아키히토 일왕의 발언을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인 가운데는 고대로 거슬러 가면 왕실이 한반도에 닿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사석에서의 이야기일 뿐 누구도 이를 공식적으로 발언해 '지존(至尊)'과 같은 일왕의 '순수한' 혈통에 흠집을 내는 것은 금기시돼 있다.

요미우리(讀賣)신문 등 대부분 언론들이 일왕의 발언 가운데 "양국 국민이 이해하고 신뢰해야 한다"는 내용만 보도하고 백제와의 관련 부분을 뺀 것은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의 발언은 아사히(朝日)신문을 통해 알려졌다. 이 신문은 23일자 1면에 일왕의 발언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주일 한국문화원 관계자는 "외교상 일본을 대표하는 천황이 이같이 발언한 것은 일본 황실이 상당히 진보적으로 변했고, 천황이 한.일관계를 매우 중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일왕의 기자회견 내용은 통상 내부 의견 수렴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번 일왕의 발언은 왕실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한국측의 거듭된 요청에도 내년도 월드컵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한 일왕이 한국측을 배려해 발언했다는 해석도 있다.

도코로 이사무(所功)교토산업대 일본문화연구소장은 "일.한 관계를 정확히 재인식하고 싶다는 열의.각오를 느낀다"며 "현재 일.한관계는 식민지 이후 역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1천년 이상의 역사관계를 조명해 이해의 폭을 넓히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하타 이쿠히코(秦郁彦)니혼대 교수는 "천황이 한국과의 역사관계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매우 의외"라며 "교과서 문제 등을 겪은 고이즈미 내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교토대 명예교수는 "천황이 불행했던 관계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 것도 중요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작가 이노세 나오키(猪瀨直樹)는 "월드컵 공동개최를 앞두고 이같이 발언한 것은 우호관계를 구축하자는 메시지"라며 "일본에 적대적인 한국의 자세도 바뀌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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