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의 현장] 불확실성에 흔들리는 증시 … ‘시장의 공포’를 역이용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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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글로벌 경기의 회복세와 주가 상승을 낙관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던가. 정상화된 경제에 맞춰 곧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출구전략 논의까지 활발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아직도 글로벌 경제가 위기의 터널에 갇혀 있음을 투자자들은 실감했다. 기자도 상황을 녹록하게 봤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월 그리스 사태가 불거졌을 때 기자는 “유럽연합(EU) 회원국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협조로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머지않아 가라앉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EU 국가들이 사태를 초동에 수습하지 못하고 미적거리는 사이에 재정위기는 금융위기로 번졌고, 이제 실물경제로까지 불똥이 튈 듯한 상황이다. 글로벌 경제의 더블딥(일시 회복 뒤 다시 침체)은 물론 일본식의 디플레이션(물가하락을 동반한 경제의 장기 침체)까지 걱정하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렇듯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으니 시장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황이 험해졌다고 자포자기해선 안 된다. 극도의 공포와 혼란에 빠졌을 때가 시장은 바닥이었다는 역사적 경험을 되새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멀리는 1998년 외환위기 때가 그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명한 투자자라면 시장의 공포를 거꾸로 이용하며 기회를 엿봐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다만 바닥을 확인하고 새로운 상승 영역으로 나아가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넘어야 할 큰 산이 몇 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산들을 정복해야 글로벌 경제는 위기를 발판 삼아 거듭 태어나는 ‘뉴 노멀’의 평원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우선 확인해야 할 것은 그리스 등 일부 남유럽 국가 부채에 대한 채무 재조정 여부다. 긴축재정 카드만으론 사태를 악화시킬 따름이라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재정의 축소는 곧 실물경기의 버팀목 하나를 스스로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채무부담을 줄이면서 재정 기능을 살려줘야 시장의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과거 80년대 남미 외채위기 때 사태수습의 카드였던 ‘브래디채권’ 같은 게 결국 나와야 할 것으로 본다. 당시 멕시코 등 일부 남미 국가의 외채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미국은 남미 국채(만기 1~3년)를 만기 30~50년의 초저금리 국채로 바꿔줘 사태를 수습했다. 장부상 채권의 원금은 똑같지만 만기가 크게 길어지고 금리도 낮아지면서 사실상 부채 탕감의 성격을 갖는 게 이 채권의 특징이다. 최근 유럽계 은행들이 현금 확보에 혈안인 것도 사실상 이런 채무 재조정에 대비하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이번 사태로 인한 실물경제의 훼손 정도다. 미국의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미국 경제도 일본식 ‘잃어버린 10년’의 디플레에 빠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끔찍한 전망이다. 하지만 아직 대다수 전문가는 경기 상승세가 예상보다 완만해지는 정도가 될 것이고, 아주 나빠져도 더블딥일 것으로 진단한다.

문제는 실물경제의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는 일정한 시차를 두고 더디게 산출된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서두르지 않는 여유도 요구되는 이유다.

우리가 믿고 기대할 것은 한국 기업들의 저력이다. 한국의 대표 기업들은 위기를 거칠수록 강해지는 면모를 과시해왔다. 이번 위기 뒤에도 또 다른 승자 독식의 시대가 열릴 것이며, 우리 기업들은 누구보다 큰 열매를 따게 되지 않을까. 아무도 미래를 단정할 순 없다. 그러나 차분히 역사를 돌아보면 미래를 가늠케 하는 근사한 답들을 얻을 수 있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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