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辛씨 사전 영장 청구… 수사 남은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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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검찰이 21일 신광옥(辛光玉)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해 일부 간부들의 불구속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진승현(陳承鉉) 로비의혹 사건을 성역없이 수사하겠다는 재수사 초기의 다짐을 실천에 옮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辛씨가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데도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 것은 辛씨의 진술내용을 검찰이 그만큼 믿지 않았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경찰 수사결과 辛씨가 청와대 내 민정수석 사무실에서 두차례에 걸쳐 崔씨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고위 공직자들의 도덕성이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게 했다.

따라서 많은 변호사는 물론 검찰 관계자들조차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검찰.경찰.금감원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무실 등에서 한번에 3백만원씩을 받고 陳씨를 도와주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앞으로 보강수사를 통해 "辛수석에게 주겠다"며 陳씨에게서 현금 1억원을 받아간 최택곤(崔澤坤)씨가 나머지 돈을 어떻게 했는지를 밝혀야 辛씨 수뢰액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진통겪은 辛씨 영장 청구=이번 수사를 지휘한 서울지검 고위 간부는 21일 "제 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辛전차관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일부 검찰 간부는 20일 수사팀 관계자와의 회의에서 "최택곤씨의 진술 외에 확실한 증거가 없고 30년간 공직에 있었던 차관급 인사를 1천8백만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현찰이 오간 뇌물 사건에서는 돈을 준 사람의 진술에 일관성과 구체성만 있으면 법원에서도 유죄판결이 나오기 때문에 이들 간부들의 주장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결국 수사팀은 검찰이 지난해 陳씨 사건을 제대로 파헤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난 마당에 辛씨마저 불구속할 경우 '제 식구 봐주기'라는 비난 등 형평성 시비가 일어날 수 있다는 등 네가지 이유로 간부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수사팀이 내세운 둘째 이유는 대통령을 직접 보좌하며 사정업무를 총괄하는 민정수석이 적은 금액이라도 금품을 받은 것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辛전차관이 "陳씨와는 일면식도 없고 돈을 한푼이라도 받았으면 할복한다"고 말했지만 지난해 5월 崔씨와 陳씨 등과 식사를 같이 했으며 崔씨와는 지난해 열차례 이상 만나 여섯차례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는 등 고위 공직자로서의 도덕성에 먹칠을 했다는 것이다.

◇ 차관급 구속 기준 논란=20일 밤 서울지검 고위 관계자는 "보통 辛씨와 같은 차관급 인사들은 뇌물액이 3천만원을 넘어야 구속했기 때문에 내일 영장을 청구할지 여부는 반반"이라고 말해 수사팀을 당혹스럽게 했다.

공무원이 받은 뇌물이 1천만원을 넘을 경우 형법 형량보다 무겁게 처벌하도록 된 특가법 규정에 따라 법정형이 징역 5년 이상이어서 이 간부의 주장은 검찰 내부에서조차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수사 관계자들은 "辛씨에 대한 구속 여부는 22일 법원이 결정하겠지만 辛씨가 崔씨에게서 돈을 받고 몇가지 도움을 주었다는 증거가 명백한 데다 辛씨가 혐의내용을 전면 부인하기 때문에 구속영장이 발부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 辛전차관 혐의 내용과 남은 의혹=검찰에 따르면 崔씨는 지난해 3~10월 여섯차례에 걸쳐 당시 辛민정수석에게 1천8백만원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3~5월 사이 네차례는 금융감독원의 열린상호신용금고 검사와 사직동팀(경찰청 조사과)의 내사 문제를 잘 처리해달라고 부탁하며 돈을 전달했다는 것이며 9,10월에는 검찰 수사를 알아봐 달라는 명목이었다.

검찰은 또 崔씨가 "당시 辛수석은 내가 MCI코리아 고문을 맡은 사실을 알고 있었고 내가 부탁한 내용을 알아봐준 적도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辛전차관이 금융감독원과 사직동팀.검찰 등에 구체적으로 어떤 압력을 행사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특히 陳씨가 검찰에 의해 출국금지(지난해 9월 2일)되고 지명수배(지난해 9월 18일)된 이후 辛전차관이 崔씨에게서 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辛전차관이 당시 수사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규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원배.정용환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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