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나의 아버지 여운형'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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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최근 출판가에서는 체 게바라.등소평.트로츠키 등 정치가들의 평전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외국인들이란 점이 못내 아쉬웠다.

몽양(夢陽) 여운형(1886~1947)은 격동의 20세기를 함께 살았던 이들과 비교해볼 때 결코 떨어지지 않는 실천가였다."(13쪽)

이 책을 엮은이가 쓴 서문이 눈길을 끈다. 공감 때문이다. 일제시대와 분단시대 전기(前期)를 살았던 핵심 정치인,그러나 좌우익 사이에서 설 땅이 비좁았고, 그 때문에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피격됐던 인물에 대해 느끼는 살붙이 같은 애정 때문이다.

문제는 거물 정치인을 다뤘다고 해서 좋은 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물 크기의 몽양에 얼마만큼이나 접근했을까가 관건이다.

책 제목에서 보듯 이 책은 몽양의 딸 연구(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가 썼다. 1996년 차 사고로 사망하기 전 일본에서 발간되는 잡지 '통일평론'에 연재했던 글이 책의 몸체다. 여기에 엮은이가 5개의 기록을 덧붙여 성실한 부록을 만들었다.

몽양과 김일성 사이의 회담을 기록한 러시아 기밀문서 등은 '아버지 회상'에 더해 기록적 가치가 돋보인다.

딸이 쓴 회상기라서 엄밀한 의미의 평전과는 다르다. 구수한 이야기 식의 서술은 평이하면서도 명료하다. '일떠서서'(봉기해서) 등 북한식 표현이 노출돼 있는 점으로 보아 책 제작과정에서 맞춤법만을 우리 식으로 부분 조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 때문에 김일성을 은근히 부각하려는 대목도 일부 보이나,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며 읽기에는 문제가 없을 듯싶다.

분석적 서술을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북한식 문장은 처음에는 다소 싱겁다. 이를테면 젊은 시절 몽양이 중국행을 결심하는 대목을 이렇게 서술한다. "아버지는 나라를 독립시키려는 비장한 각오와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맹세를 안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한데 이런 서술이 비교적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고,책을 읽는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뜻밖의 효과가 있다는 발견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간적 측면의 묘사가 적지 않고, 몽양이 춘원 이광수나 윤치호 등 일제 협력자들을 "한줌밖에 되지 않는 위인들"이라며 얼마나 멸시했나 하는 대목도 몽양의 사람됨과 이념적 지향을 암시한다.

진보적 민족주의자인 그가 초창기부터 상해 임정에 기대를 갖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뒀던 사정, 그가 레닌과 스탈린 등과 차례로 가진 면담 등도 '잊혀진 몽양'의 행동반경을 증언한다. 그가 1920년께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서'등 일련의 사회주의 문건을 차례로 번역했던 사정도 관심있게 읽힌다.

조선중앙일보의 발행인으로서 합법적 공간에서 좌파 활동을 해나간 몽양 운신(運身)의 비밀도 책에서 풀린다. 책에서 보이는 그의 인물됨은 당대의 웅변가답게 호방하고 낙천적이었음도 확인된다. 책의 중간에 몽양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사진도 볼거리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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