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와이드] 전문책방서 책 구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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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추운 날씨로 움츠러들기 쉬운 계절.베스트셀러 등 대중의 구미에 당기는 책 위주로 전시된 일반서점보다 특정분야의 책만 갖춘 전문서점을 찾아 ‘나만의 독서’를 즐겨보자.

음악 ·디자인 등에서 만화에 이르기까지 전문서점들의 취급 분야는 의외로 다양하다.외국서적전문점에선 이국 분위기마저 느껴지고, 북한서적 전문점도 있다.

#외국서적전문점

평북 의주 출신인 백환규(81)할아버지와 장의순(79)할머니가 1957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독일서적 전문 ‘소피아서점’.10평 남짓한 매장에 들어서면 독문학 ·법학 ·철학 ·신학 등 45년의 손때가 묻은 1만여권의 독일책이 손님을 반긴다.이들은 종종 부부로 오해받지만 동향 출신 동업자일 뿐이다.

이곳의 한가지 흠은 서대문구 충정로의 한 오피스텔 13층에 간판도 제대로 없이 영업해 찾기

가 쉽지 않다는 점.이유를 묻자 白씨는 “쉽게 구해 읽는 책은 쉽게 잊혀지는 법”이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독일 ·프랑스책만 다루는 ‘영우무역’은 고객의 주문이 있으면 어떤 책이라도 한 달 정도면 들여온다고 자신한다.양천구 신정동의 매장에 독일·프랑스 어학교재(1만5천 ∼ 3만원) 및 각종 학술서(1만 ∼ 50만원) 2만여권을 갖춰놓고 있다.

명동의 ‘중화서국’은 화교인 여혜심(32·여)씨가 운영하는 중국서적 전문점.대륙 ·대만 ·홍콩의 각종 서적 1만여권을 구비해 놓고 있다.

이곳에서 요즘 인기있는 책은 『적천수천미(適天髓闡微)』(대만 무릉출판사 ·1만5천원)등 풍수지리 ·역술 ·점술 관련 서적.점원 고화영(20 ·여)씨는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할수록 점술책이 잘 팔린다”고 말했다.

종로구 인사동의 ‘중국도서문화중심’은 중국의 학술서적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가격은 4백원짜리 『간독집성(簡讀集成)』에서 4천8백만원짜리 『속수사고전서(續修四庫全書)』까지 천차만별이다.

북한책만 다루는 종로구 연지동의 ‘대훈서적’에서는 『조선료리전집』(조선료리협회·전4권·각권 9만원),『조선대백과사전』(평양백과사전출판사·전30권·각권 15만6천원) 등 흥미로운 북한책과 만날 수 있다.

중구 을지로6가의 ‘홍문관’과 ‘정은도서’에는 패션 ·디자인 ·인테리어 ·연예 등 전세계의 각종 잡지가 가득하다.가격은 구간이 1천∼8천원,신간은 2만∼6만원선이다.

영어교재 전문인 ‘잉글리시 플러스’,‘킴앤존슨’등도 성업 중인 전문서점.수도권 일대에만 5곳의 지점을 갖춘 ‘스토리하우스’는 미국·영국 등 영어권 국가의 동화책만 취급한다.

#예술전문서점

원목으로 장식된 유럽풍 인테리어에 사방의 벽을 가득 메운 벽화.순수미술 ·건축 ·디자인 ·패션 ·사진 등 다양한 예술장르의 책을 취급하는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의 ‘아티누스’는 서점이라기보다 포근한 카페를 연상시킨다.

4천여종의 해외 예술서가 1백평 규모의 1층 매장에,5천여종의 국내 서적이 2백평 정도의 2층 매장에 빼곡하다.

10평 남짓한 지하갤러리에서 의상·사진·미술 등 다양한 전시회를 마련하는 것도 예술전문서점답다.이달 31일까지 만화가 박희정(31·여)씨의 일러스트전이 열린다.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개방하며 입장은 무료다.

명동성당 앞의 ‘대한음악사’는 50여년간 악보와 음악 관련 책만 취급해온 세계적인 음악전문서점.낡디 낡은 6층 건물 중 1층만 매장이고 2층에서 6층까지는 4만5천여종의 악보가 가득찬 창고다.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음악하는 사람치고 이곳을 거쳐가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주인 신재복(77)씨는 “지휘자 금난새씨가 고교시절부터 아버지 손을 잡고 우리 가게를 찾았다”며 자랑했다.

마포구 동교동의 ‘한양툰크’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만화전문서점.1층 매장에서는 국내출판사가 발간한 각종 만화책 3만여권을 20%씩 할인해 팔고 지하매장에선 2만여권이 넘는 일본 직수입 만화를 다루고 있다.

만화서점이라고 주고객이 어린이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70% 이상이 20∼30대 성인들.사장 김기성(41)씨는 “중·고생들은 오더라도 한 두권 사가는 데 그치지만 성인들은 보통 10권 이상씩 사 가 월 1억여원의 매출을 대부분 이들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밖에 미술 ·건축 전문서점인 ‘인데코 아트북’,디자인 ·애니메이션책만 파는 ‘영진서적’ 등이 대표적인 예술전문서점.만화전문 도·소매서점 10여곳이 몰려 있는 종로5 ·6가 거리도 가볼만한 곳이다.

글=김선하 기자,사진=김경빈 기자

*** 사회과학 서점들 살아남기 변신 서둘러

서울 마포구 마포동의 '한국학 전문서점'은 고객의 30% 이상이 일본인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문학.철학.민속학 및 초창기 신문을 주로 취급하는 이 서점의 영업전략은 의외로 '세계화'. 전세계의 한국학 연구자들을 고객으로 잡는 것이 목표다.

최우선 공략대상은 가까운 일본의 대학교수나 박사학위 과정에 있는 한국학 전공자들. 영업과장 한신규(32)씨는 "일본인들은 매일신보.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 등 구한말~일제시대의 신문 축쇄판을 주로 찾는데 가격이 50만~7백만원에 달해 경영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즐거워했다.

이곳의 단골손님인 숙명여대 이만열(李萬烈.한국사)교수는 "이 서점이 한국학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부터 대학가에 하나 둘 들어섰던 사회과학 전문서점들은 최근 생존을 위한 변신 몸부림이 치열하다. 80년대 중반 30여개에 달하던 서울시내 대학가 사회과학 서점의 대부분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이제는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 건국대 앞 '인서점' 등 대여섯 곳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인서점 심범섭(58)사장은 "90년대 중반 이후로는 이념서적을 찾는 학생들이 거의 없다"며 "몇년 전부터는 아예 간판을 '문화과학전문'으로 바꿔 달고 문화서적을 주로 취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계천 평화시장 일대의 헌책방들도 전문화바람을 타고 있다. 한때 1백80여개 서점이 모여 영업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지만 헌책에 대한 수요가 점점 줄어든 데다 대부분의 서점이 중.고생용 참고서를 취급하다 보니 경쟁이 지나치게 치열해졌던 것.

현재 남아 있는 54개 업소는 거의 모두 간판에 나름대로의 전문분야를 내걸고 영업 중이다. '두꺼비''하나''대광''신흥' 등은 아동물을,'유림''상현''함양''국민' 등은 대학교재를 주로 다룬다.'글방''평화''대한''양지' 등 사전을 취급하는 곳과 '성문''합동''성신''개혁' 등 기독교 서적을 주로 파는 곳도 많다. 이들 서점은 최근 들어 대부분 헌책과 새책을 함께 취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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