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망년회가 뭐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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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꼭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망년회다. 한 사람당 평균 몇번의 망년회를 하는지는 연구나 조사보고서가 없어 잘 모르겠지만 직원들이나 주변의 한국 친구들을 보면 연말에는 거의 저녁마다 술에 젖어서 산다. 날이면 날마다 망년회에 참석하기 때문이다.

*** 술이 술을 먹는 연말모임

그래서 한국 사람들과 비즈니스로 연말에 저녁을 먹는 약속을 잡는 것은 쉽지 않다. 망년회 스케줄로 꽉 차있기 때문이다.

직장의 과망년회가 있고, 부서에서 하는 연말 회식이 있고, 친한 직장동료끼리 또 있고,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 동창모임이 있고, 전 직장동료 망년회가 있고, 군대친구들 모임이 있고, 고향친구들 모임이 있고…. 어찌나 건수가 많은지 듣는 사람이 어지러울 정도다.

여성들도 무척 바쁘다. 강남에 회사가 있어서 리츠칼튼 호텔을 자주 이용하는데 요즘은 주부들의 망년회 모임으로 무척 붐빈다. 사무실 여직원이 사우나에서 들은 얘기를 내게 해주었는데 주부들도 참으로 다양한 망년회에 참석하는 것을 알았다.

여고 동창, 대학 동창, 종교를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의 송년모임, 먼저 살던 동네친구들 모임, 같은 헬스클럽 회원모임, 계원들끼리 모임, 아이들 친구 엄마들의 모임, 아이들의 과외학원 엄마들 망년회 등등.

한마디로 12월의 대한민국은 망년회 천국인 것 같다. 이렇게 많이 모여서 먹고 마셔서 소비를 늘리면 대한민국 경제의 성장률을 높이는 데 매우 공헌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망년회라면 좀 더 가족적이고 건설적이고 사회에 보탬도 되는 망년회가 더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임러 크라이슬러는 연말 모임으로 지난 주에 전직원과 직원의 가족 모두 함께 1박2일로 용평을 다녀왔다.

첫날 저녁에 외국인 이사가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나타나 어린 아이들에게 미리 준비한 선물을 나눠 주었는데 외국인이다 보니까 아이들이 진짜 산타가 나타나 착한 일 했다고 선물을 주는 줄로 알고 너무 좋아했는데 그 아이들의 순수한 미소는 가슴에 영원히 남는다.

다음날은 가족끼리 스키를 타거나 각종 게임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회사에서 송년파티를 하는 것은 지난 일년 동안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고 일한 직원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다. 직원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배경엔 직원 가족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격려가 있었기 때문인데 송년파티라면 당연히 가족과 함께 즐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카디-마티니는 주류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망년회에 술파티를 안한다. 대신 보육원과 장애인 시설을 돕기 위한 자선파티를 개최한다. 물론 이 티켓을 팔아 얻은 수익금은 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인다. 망년회 준비 대신 이 회사 직원들은 자선파티 티켓을 판다. 연말일수록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것이 좋은 한 해를 마감하는 것이란 생각에 전직원이 동의했음은 물론이다.

*** 가족 동참 함께 즐겼으면

한국 남성의 망년회 문화는 대체적으로 획일적이다. 1차는 고기.생선회 같은 것과 술을 곁들여 저녁식사를 하고 그 다음에는 2차로 향한다. 11~12시가 되면 다시 삼차로 향하는데 여기서부터는 술이 술을 먹는 단계로 접어든다.

집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가 기다리는데 지나간 한해를 잊기 위해 많은 술을 마신다. 몸도 시간도 망가지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속은 쓰리고 머리는 아픈데 저녁이 되면 또 반복되는 스케줄이 기다린다.

한해를 보내면서 좋은 것은 기억하고 나쁜 것은 잊고 또 정겨운 사람들과 만나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리고 한국인은 정이 많고 친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문화가 번성하는 것은 당연하다. 망년회를 조금만 다양한 방법으로 치른다면 더 뜻깊고 의미 있고 보람되지 않을까? 더군다나 집에서는 사랑받는 남편이 될 수도 있고….

웨인첨리(다임러크라이슬러 코리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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