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의 페미니즘 모임…이 세상 모든 차별은 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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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22일 오후 5시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하자센터 서울시립 청소년 직업 체험센터(http://www.haja.net)에 가면 조금은 특별한 소녀들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소녀들의 페미니즘'이라는 모임의 회원들이다.

이날 센터에서는 신학자 정현경(45)씨의 책 『미래에서 온 편지』와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열림원)의 출판 기념회가 열린다.

이 행사를 기획한 '소녀들의 페미니즘'은 직접 만든 영상과 춤.노래.퍼포먼스 등을 통해 세상을 치유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정수.세나.유미.핏빛 솜사탕.상츄.뮤즈.원.지효.하토.성경.나영.나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여권 신장론자)'라고 말하는 12명의 소녀들. 이들은 서로 본명이 아닌 자기가 만든 이름으로 부른다.

10대 중반부터 20대 초반까지의 중.고생, 대학생, 자퇴생, 혹은 대학을 진학하지 않은 이들이 섞여 있다.

이들이 처음 모인 것은 올 4월. 여성주의 시를 썼던 고정희 시인의 타계 10주년을 맞아 '고정희 추모제'를 준비하면서다. 행사를 공동 주최한 '하자센터'와 고정희씨가 동인으로 활동했던 사단법인 '또 하나의 문화'에서 활동하는 10대가 주축이다.

'웬 소녀?''웬 페미니즘?'이라는 질문에 이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답한다.

"'소녀들'과 '페미니즘'. 얼핏 들으면 어색하게 느껴지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소녀들은 항상 찬밥 아니었던가요. 어렸을 땐 오빠나 남동생에게 치이고, 크면서는 그저 여자답게 다소곳하게 자라야 한다고 교육받죠.

한편으로는 남자들의 농담이나 환상 속에서, 영화나 글 속에서 성적(性的)대상이 되고요. 저희는 이제 세상을 향해 '소녀들'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

"여자이고 어리다는 이유로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느낌을 받는다"고 '원'은 말했다.

"세상은 '아저씨'들의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 있어요. 불빛이 환한 서울 영등포역에서 친구로 보이는 술취한 두 아저씨가 만났어요. 영등포역이 자기들 집인 양 큰 소리로 반가워하더니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뒤돌아서서 나란히 볼 일을 보더군요.

그들이 여자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죠. 아줌마는 공공연한 비하의 대상인 것과 달리 아저씨는 외환 위기를 지나면서 '고생하는 불쌍한 우리 아버지'가 됐어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센 사람들은 아저씨들 아닌가요."

원조교제에 대한 '소녀들'의 생각을 물었다.

"10대 소녀들을 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성(性)을 팔 수 있다는 걸 배우며 자라게 되지 않나요.

특히 돈을 벌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때 1시간에 1천6백원을 받고 일할 수도 있지만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이 주변에 너무 많잖아요. 어린 여학생들을 성(性)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사라져야겠죠."

고정희 시인 추모제 이후 이들은 여러 활동을 해왔다. 선배 페미니스트들과의 대화를 위한 파티, 여성학을 공부하는 워크숍, '월경(月經) 페스티벌'에서의 공연 등 쉴 틈없는 나날이었다.

이들은 함께 각종 행사를 기획하고 영상.춤.노래와 '슬램'이라는 힙합과 랩, 시가 섞인 자신들의 언어로 스스로를 표현한다.

이들은 앞으로 하자센터.서울시.연세대가 주최하는 '디스토리(디지털 스토리 텔링)페스티벌'을 시작으로 또래 소녀들과의 만남에 주력할 생각이다.

웹사이트(http://www.dstory.net)에 마련된 자신들의 코너 'Slam'을 통해 소녀들끼리 대화와 음악을 주고 받으며 다른 소녀들과 친해지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다.

"언젠가는 '소녀 학교'를 만들어 보겠다는 꿈이 있어요. 여자 아이들이 본받을 만한 역할 모델을 찾아주는 그런 학교였으면 해요.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회적으로 힘이 약한 사람들의 활동이 자연스럽게 지원받는 그런 사회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죠."

글=김현경, 사진=김성룡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 '소녀들의 페미니즘'웹 사이트= (http://www.haja.net/feministgirls)

*** 페미니즘 모임 12명 자기소개

나영(21)

외교학을 공부하는 대학 3학년. 내 몸의 꿈틀거림, 눈빛의 꿈틀거림. 항상 뭔가 말을 하고 싶은….

상츄(19)

이름은 안유리. 고3 소녀.이젠 made in 20, 영상을 하는 사람.

핏빛 솜사탕

나이는 묻지 말길. 눈으로 말하는 사람, 몸짓에 희망이 담긴 사람이 되고 싶어.

(http://www.dstory.net)에 마련된 우리들의 코너 '슬램은 사랑을 싣고'로 오세요.

정수(21)

사회학을 공부하는 대학 3학년. 뜰에 심은 나무.

지효(20)

법을 공부하는 대학 2학년. 지효라고해 효라고도하지효라고해. 잘 살려고 애쓰고 있는 학생.

유미(18)

미술을 공부하는 대학 1학년. 소녀 디자이너.

나은(20)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 1학년. 'Better than now'.

성경(20)

특정 종교와 상관없음. 하자센터 작업장 학교에서 공부 중.'Gurl who see something'('gurl'은 새로운 의미로 해석한 'girl'이에요).

세나(19)

세상의 나. 사주 보는 사람이 여자 이름으로 '세상의 나'는 드세다고 하지만, 왜 그런 걱정을 하나. 초절정 액션 중심주의 뮤지션.

원(19)

내 이름은 원. 아,원 아,투 아,원 투 스리 포! 영상제작자, 슬래머('슬램'을 하는 사람).

뮤즈(16)

천안에 사는 고등학교 2학년.그리스 신화 속 아홉 여신 중 한 명.

하토(14)

예비 여고생. 새우 '하', 토끼 '토', 하자점넷 슬래시에 하토. 디지털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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