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안 주는 전남편 15~20일 감치될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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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은 흔히 자녀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특히 미성년 자녀의 경우에는 자라면서 탈선을 하거나 우울증에 빠질 위험도 있다. 서울가정법원을 비롯한 이혼 관련 기관에서는 부부의 이혼 과정에서 자녀 양육권이 원만하게 분할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혼 후에도 아이가 제대로 양육받을 수 있게 조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혼은 남녀 두 사람만의 문제”라는 인식이 만연한 것이 사실. 심지어 이혼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아이에게 “네 엄마(아빠)가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라며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다. 아이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절대 하지 말아야 될 행동이다. 이혼을 앞둔 부부가 ‘부모로서’ 알아야 할 자녀 문제 해법와 법률 상식을 알아보자.

◆양육비 안 주는 전 남편 감치도 가능…양육비 비싸게 합의해도 함부로 깎을 수 없어

이혼 과정에서 양육비 문제는 중요하다. 협의이혼의 경우에는 당사자가 조정위원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양육비 문제를 논하게 된다. 이혼 소송을 할 때는 판결문에 양육비 지급액을 명시한다. 정해진 양육비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지켜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지난달 서울가정법원에서는 양육비를 깎으려다 소송비용만 날린 30대 전문직 남성의 이야기가 널리 회자됐다. 2008년 회사 동료와 간통한 것이 적발돼 이혼한 그는 부인이 간통죄 고소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생활비 월 100만원과 교육비 실비 전액을 지급하겠다’는 양육비 지급 각서를 써줬다. 부유한 집에서 자란 그는 이혼을 하면서 부인에게 강남의 아파트를 재산분할해 줬다.

이 남성은 2009년까지 매월 200만원씩 전처에게 지급했다. 하지만 딸의 사교육비가 늘어나면서 지급액은 250만원까지 올라갔다. 이에 그는 “양육비가 너무 많다”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자신의 월급(월 300만원)에 비해 너무 많다는 주장이었다.

1심에서는 “생활비와 교육비 명목으로 월 250만원씩 지급하라”는 결정이 나왔다. 그는 다시 항고를 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에서는 “별다른 사정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이미 합의한 것과 다른 양육비를 정할 이유가 없다”며 기각했다. 가정법원 관계자는 “전 남편 측이 충분히 지불할 능력이 있었고, 간통죄를 면하기 위해 다소 높은 양육비에 합의를 한 것이 인정됐다”며 “최초 합의 때와 달라진 것이 없는데 ‘양육비가 비싸다’는 이유로 깎아줄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합의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 법원이 배우자의 회사에 양육비 지급을 명령할 수 있다. 지난해 신설된 ‘양육비 지급명령제도’가 그것이다. 명령이 내려지면 배우자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직접 배우자에게 양육비를 송금해야 한다. 직장인이 아닌 배우자의 경우에는 연간 양육비의 20% 가량을 법원에 현금으로 공탁하게 하는 담보제공명령 또는 양육비 이행을 명령하는 이행명령이 가능하다. 이행명령을 거부하면 15~20일씩 감치될 수도 있다.

◆이혼 위기가정은 법원에서 도움 받을 수 있어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아이들은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5단계를 거친다. ‘어찌 이럴 수 있느냐’며 반발ㆍ분노했다가 ‘내가 잘 행동하면 아빠ㆍ엄마가 재결합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도 했다가 결국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린 자녀의 경우 우울증이나 대인기피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이혼 과정 중 가정폭력이나 부모의 폭언, 가출 등으로 자녀들이 정신적 혼란을 겪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이 때는 법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서울가정법원은 ‘이혼 가정 자녀 솔루션’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재판 중 가정에 심각한 위기가 있는 경우 판사 6명과 가사조사관 5명, 교수 등 전문가 7명 등으로 구성된 솔루션팀에서 해법을 찾아주는 것이다. 부부 상담과 자녀 심리치료, 1:1 부모교육 등이 진행된다.가사조사관들이 솔루션 진행 도중 부부의 태도 및 양육환경, 교육열 등과 같은 요소를 파악해 양육권 결정 등을 판단하는 재판 자료로 제출한다.

전국 각 지방법원 가사부ㆍ가정지원에서도 이혼 위기 가정의 자문을 위한 가사조사관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이혼 소송으로 격앙된 당사자들에게 상담을 해주면서 냉정하게 판단하도록 돕는다.이와함께 자녀 심리치료, 부모 교육, 양육방법 조언 등을 하고 있다.

이혼 과정 중 떨어져 있는 부모(비양육친)와 자녀가 함께 할 수 있는 캠프도 개설돼 있다. 아이와 부모 간의 유대감을 키우는 것은 물론, 이혼을 하더라도 자녀의 양육환경 또는 양육 열의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서울가정법원의 판사들과 가사조사관 등이 직접 캠프 강사로 나선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열린 캠프에서는 “아버지를 볼 필요 없다”며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을 극구 반대하던 한 어머니가 캠프에 참가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재밌게 이야기 하고 웃는 모습을 본 그녀는 아버지의 면접 교섭에 동의했다. 올해는 6월 12~13일, 10월 9~10일에 각각 캠프가 개설된다.접수는 서울가정법원에서 가능하다.

각 자치단체에 설치된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도 이혼과 가정 불화 문제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마포구 건강가정지원센터는 매주 월~금요일 오전 9시~오후 6시 가정 문제로 인한 상담을 진행한다.

◆섣부른 자녀 성(姓)ㆍ본(本) 변경은 상처될 수 있으니 심사숙고를

재혼을 한 부부의 경우 전 배우자와의 자녀들이 새 가정에서 적응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다. 자녀들과 새 아버지의 성이 다를 경우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2008년 개정 민법의 시행으로 ‘자녀의 복리를 위해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는 법원에 ‘성ㆍ본 변경 청구’를 할 수 있다. 자녀 본인 또는 부모의 청구에 따라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도 있고, 재혼한 아버지의 성으로 변경할 수도 있다. 새 아버지가 외국인인 경우에는 본 없이 외국 성만 따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혼 후 ‘전 남편의 기억은 모두 지우겠다’며 무턱대고 자녀의 성을 바꾸거나 재혼 가정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녀에게 새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지난달 서울가정법원 가사20단독 윤종섭 판사는 부모 이혼 후 어머니의 성으로 바꿨다가, “친구들이 자꾸 ‘왜 성을 바꿨냐’고 물어봐서 괴롭다”며 본래의 성으로 되돌려달라는 한 중학생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성ㆍ본 변경을 신청할 때는 자녀 본인이 법정에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 가정법원을 찾는 부모들은 대개 ‘자녀 교육에 좋지 않다’며 법정 출석을 꺼린다. 하지만 성ㆍ본을 다시 바꿀 경우에는 자녀가 법정에 출석할 수도 있다. 성씨를 다시 바꾸는 일은 개인의 일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어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가정법원 김윤정 공보판사는 “성ㆍ본 변경은 아이를 위해 만든 제도이지, 부모의 한 풀이를 위해 만든 제도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 판사는 “성을 다시 바꾸게 될 경우 자녀에게 오히려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재혼 가정이 안정되거나 본인의 결심이 서는 등 여건이 됐을 때 신청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협의 이혼 전에는 부모교육 받아야

이혼 전문가들은 “이혼을 할 때는 부부의 문제와 부모의 문제를 구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이는 서울가정법원이 올해 초부터 월~금요일 오후 1시에 실시하는 부모교육에서 강조하는 주요 포인트다. 서울가정법원에서는 협의이혼하려는 모든 부부에 대해 부모교육 수강을 의무화 하고 있다. 1시간 동안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이는 자녀의 심리상태, ▲자녀에게 해서는 안되는 행동, ▲양육하지 않는 부모와 자녀의 만남, ▲양육비 문제 등을 강의한다. 강의를 들은 후 확인증을 재판부에 제출해야 한다.

이혼을 앞둔 부부가 범하기 쉬운 가장 잘못된 행동으로는 ‘네 엄마(아빠) 때문에 이혼한다’는 말이다. 배우자에 대해 노골적인 비하나 욕설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녀들이 ‘부모의 이혼은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에 대한 감정이 변했지만 너에 대한 애정은 변함 없다”, “아빠는 앞으로 영원히 너의 아빠”라는 식으로 자녀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현택 기자

◇이혼을 하면서 주의해야 할 자녀 문제

▶“재혼 가정에 아이를 적응시키고 싶다. 아이의 성을 바꾸려고 한다”
-자녀의 성ㆍ본 변경은 법원에서 신청 가능.
-하지만 전 남편에 대한 분노로 섣불리 판단하면 자녀에게 상처될 수 있어.

▶“아이가 대인기피 증세를 보인다”
-각 구청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무료로 상담 가능.
-협의이혼 과정에서는 가사조사관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음.
-서울가정법원의 ‘자녀 솔루션’을 받을 수도 있어

▶“전 남편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다”
-법원에 ‘양육비 지급명령’을 청구해 인용될 경우 법원에서 배우자의 회사에 지급 명령을 할 수 있음.
-직장인이 아닌 경우 강제집행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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