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방획득과 군수 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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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 국방부의 차기 통신장비(초단파 무선장비) 획득사업과 관련한 군수비리 의혹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과 야당측에서는 4천4백억원에 달하는 무선장비를 "전투용 사용 부적합"이라는 성능 판정을 받고도 이를 획득한 것은 심각한 군수비리라고 몰아치고 있다.

반면 국방부측은 이번 사업이 획득 규정대로 추진된 것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번 의혹은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더욱 문제시된다.

*** 문제 커진 무선장비 의혹

그 하나는 현정부 출범 이후 두 차례에 걸친 대폭적인 국방획득 관련 제도 개선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의혹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초대 천용택 장관 시절 국방획득의 책임성.공개성, 그리고 투명성 강화를 위한 일련의 제도 개선이 있었다.

2대 조성태 장관 역시 경쟁의 제도화, 사후관리 철저, 획득 관리교육을 통한 전문성 확보, 그리고 획득 사업에 대한 비밀 분류의 하향 조정을 통한 공개성과 투명성 제고 등 획기적인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이러한 제도 개선에도 불구하고 국방획득상의 의혹이 재연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다른 하나는 중요한 국방획득 사업을 목전에 두고 이러한 의혹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내년도에는 4조2천억원에 달하는 차기 전투기 사업(F-X), 2조4천억원 규모의 차기 대공 미사일(SAM-X)사업, 그리고 2조 1천억원 상당의 대형 공격 헬기(AH-X)사업 등 주요 국방획득이 이뤄질 예정이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의혹에 대한 확실한 규명과 군수비리 척결에 대한 국민적 납득이 선행되지 않을 경우 이들 획득 사업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군수비리를 척결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국방부의 국방획득관리규정은 이미 성능보장, 적기 전력화, 국산화 촉진, 경제적 획득, 그리고 운영유지 보장을 획득의 기본원칙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 기본원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리의 소지를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번 초단파 무선장비 사업에 대한 의혹도 경제성을 강조한 나머지 성능보장의 원칙과 운영유지보장 원칙을 간과한 데서 비롯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투명성.공개성,그리고 경쟁성의 원칙이 보다 강화돼야 한다. 군의 획득사업이 보안상 비밀을 요하기 때문에 일반 국책사업과는 다르다.

그러나 군사보안을 이유로 비리의 원인을 제도적으로 제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국방획득 사업은 공개성.투명성.경쟁성, 그리고 사업 관련 책임성 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제도적 보완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공개되고 투명해야만 경쟁성이 제고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이번 의혹은 군수비리 예방과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우선 해당 사업에 참여한 각 업체들에 사업 관련 진행 내용을 처음부터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계획단계에서부터 업체선정 등에 대한 공정성 시비를 사전에 차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사업 관련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한 관계자들에 대한 분명한 사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업실명제가 실질적으로 실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 권력의 개입 차단이 중요

이와 더불어 국방획득관리규정의 개정.보완을 통해 책임 소재의 정확성과 사후 책임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획득사업의 전 과정에 대한 철저하고도 전문적인 감시.감독 기능의 강화는 필수적이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국회와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회 국방위에는 방위력 개선 소위원회가 있다. 이 소위원회의 활성화를 통해 획득 절차의 투명화.공개화.공론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론.연구기관.시민단체 등도 국방획득 과정에 건설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들의 참여와 연구, 그리고 토론을 통한 국방획득의 공론화는 권력의 개입을 차단하고, 정보의 대칭적 공유를 가능케 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획득의 투명성과 정통성을 높여 군수비리를 구조적으로 봉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文正仁(연세대 교수.국제학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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