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이발관’ 문연 지 벌써 15년, 젊음이 가며 음악은 무르익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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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주 웃었다. 의외였다. 구조적 우울함이 깔린 음악을 빚어온 그가 흘리는 웃음이라니! 올해로 데뷔 15년차에 들어선 모던 록밴드 ‘언니네이발관’. 리더 이석원(39)은 “내가 그저 보통의 존재라는 자각을 한 순간부터 사생결단 하듯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소제목은 5집 앨범 수록 곡명)

# 가장 보통의 존재

올해로 데뷔 15년차에 들어선 모던 록밴드 ‘언니네이발관’. “자주 다투면서 쌓아온 파트너십은 어떤 밴드보다도 강하다”고 했다. 왼쪽부터 전대정(드럼)·이석원(보컬·기타)·이능룡(기타). [변선구 기자]

그 자각의 순간이란, 그가 5집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를 세상에 내놓기 직전을 말한다. 이 앨범은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비롯해 3개 부문을 차지했다. “창작에 대한 자세가 완전히 바뀐 뒤 만든 첫 작품”이라고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모든 꿈이 불가능해졌다는 자각을 하게 됐어요. 음악에 모든 걸 쏟아 부을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죠. 현실을 받아들이고 보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나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거죠.”

스스로를 ‘나이탐험가’라 부르는 그. 마흔이 코 앞인 그는 “40이란 숫자가 좋다. 젊음은 잃어가지만 마음은 넓어지니까”라고 했다. 그러니 알겠다, 인터뷰 내내 ‘풉풉’ 터지던 웃음 소리를. 이를테면 그 웃음은 희망의 폭소라기보다 평안의 미소에 가깝다. 15년간 대중음악계의 맨꼭대기를 탐해온 뮤지션이 세상에 띄우는 미소 말이다.

“음악이 늘 즐겁고 보람된 건 아니지만 15년간 끊임 없이 발전해왔다고 생각해요. 어제보다 나은 결과물을 보여주고자 늘 애쓰죠.”

# 의외의 사실

언니네이발관은 거짓말로 탄생한 밴드다. 리더 이석원이 1994년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언니네이발관이란 밴드를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로부터 꼬박 1년 뒤 그는 실제로 밴드를 꾸렸다. 모던 록 향기가 짙은 음악이 입소문이 나면서 밴드가 자리를 잡았다.

최근엔 그의 두 번째 거짓말이 현실이 됐다. 그간 홈페이지에 공개일기를 썼던 그는 “종종 출판 제의를 받았다”는 거짓말을 여기저기 흘렸다. 5집을 내고서야 일곱 군데서 한꺼번에 출판 제의를 받았을 뿐 그전엔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음악으로부터 달아나고자 글쓰기를 꿈꿨던 그, 지난해 말 『보통의 존재』란 산문집을 냈다. 일상의 경험과 단상을 엮었는데, 4개월 만에 5만부가 팔리면서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뛰어올랐다. 하긴 시에 가까운 언니네이발관의 노랫말에서 그의 글 솜씨는 이미 반짝이고 있었다. 올 가을엔 단편소설집을, 내년 봄엔 동화책 두 권을 펴낼 계획이다.

“뭐든지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음악으로도 보여주고 글로도 보여주고…. 책을 낸 것도 하나의 표현 수단이죠.”

# 산들산들

출발은 여느 인디밴드와 비슷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 언니네이발관은 사뭇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연간 유료관객 동원수가 1만 명을 웃돌고, 앨범 판매량 역시 2~3만장에 이르는 등 정상급 밴드의 면모다. “돈이나 대중의 욕구로부터 자유롭게 음악을 하는 게 인디라면 우리 밴드에는 맞지 않는 표현 같다”(이능룡·기타)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언니네이발관은 공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이들의 콘서트는 ‘월요병 콘서트’ 등 독특한 컨셉트로 매번 매진 사례를 기록해왔다. 산들산들 초여름 바람이 부는 29~30일 오후 6시 서울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콘서트가 펼쳐진다. “작품성과 예술성이 조화를 이룬 공연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02-720-0750.

글=정강현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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