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엔저 시름'…내수 우량주에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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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엔화 가치가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국내 증시에 빨간불이 켜졌다.

17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한때 달러당 1백28엔을 넘어서며 지난 1998년 10월 이후 3년여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 재무성 구로다 재무관이 "현 엔화 하락 속도는 우려할 게 못된다"며 '엔저'를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증시도 이날 크게 흔들렸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일본 수출 제품의 값이 싸져 결국 한국의 가격 경쟁력이 뒤지게 되기 때문이다.

KGI증권 윤세욱 이사는 "반도체.디스플레이.조선.철강.자동차 등 한국의 주요 5대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90% 이상 경합하고 있는 상황에서 엔저는 바로 국내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며, 이는 주가로 반영된다"고 진단했다.

◇ 영향=엔화 가치의 하락은 외국인들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이날 외국인은 지난주 14일에 이어 이틀(거래일 기준)연속 주식을 1천억원어치 이상씩 팔아치웠다.

현대증권 유용석 선임연구원은 "엔화 가치의 하락은 그동안의 주가 급등으로 가뜩이나 차익을 남기고 싶었던 외국인들로 하여금 주저없이 주식을 내다팔게끔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투증권 박해순 연구원은 "엔화 약세 기조가 이어질 경우 원화의 동반 약세에 따른 환차손 우려로 블루칩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심리가 약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엔저가 몰고 올 충격이 예전처럼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신한증권 강보성 연구원은 "엔화 가치 급락이 단기적으론 부담이 되지만 장기적인 추세를 결정짓는 변수는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굿모닝증권 홍춘욱 수석연구원도 "한국은 그동안 금융부실을 많이 털어냈고 기업구조조정도 꾸준히 해온만큼 엔저의 충격이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메릴린치도 "과거와 달리 브랜드(상표)인지도가 높아진 자동차, 가격경쟁력에서 앞선 D램과 디스플레이산업 등 한국의 수출품목이 다양해진 데 주목해야 한다"며 "엔화가 10% 이상 절하되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에 심각한 부담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투자 전략=SK증권은 이날 '엔화 약세'때는 수출주보다는 내수 관련 주식들이 강세를 보였던 과거의 경험을 감안해 내수 우량주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현정환 수석연구원은 "최근 외국인 매수가 집중되고 있는 코스닥의 우량주들이 엔화 약세의 틈을 타 증시의 주도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김현기.김동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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