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 일 박사의 경제해법 찾기] 경제도 정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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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내외 환경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나라가 국제경쟁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들이 미래지향적인 적응력을 발휘하지 못하여 국제경쟁에서 처지게 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 취약해진 국제금융 체제

가까운 일본의 경우를 한번 살펴보자. 얼마 전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어느 미국 학자는 일본 금융체제의 붕괴 가능성이 현재 세계경제가 안고있는 가장 큰 불안요인이라고 경고하고 나서 세인의 새로운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또 며칠 전에는 미국 워싱턴 소재 유명 연구원의 국제금융 전문가가 일본 금융위기 가능성에 관해 좀 더 구체적인 주장을 내놓은 것으로 외신이 전한 바 있다.

전세계가 아르헨티나의 금융위기마저 걱정해야 하는 현재의 취약한 국제 금융체제하에서 만약 세계 제2 경제대국인 일본의 금융위기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때 몰아닥칠 엔화의 '자유낙하'는 일본경제뿐 아니라 세계경제 전체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충격을 주게 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럼 도대체 잘 나가던 일본이 어떻게 해서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허송하게 되었고 급기야 오늘에 와서 세계경제에 가장 큰 위협요소로까지 전락하기에 이르게 되었나.

한마디로 이것은 일본 정부와 정치권이 당장 인기 없고 고통스런 금융기관 구조조정 등 일본 경제의 근본문제 해결은 미뤄둔 채, 적자재정과 저금리 시책 등 손쉬운 임시방편적인 시책에만 매달려온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좀더 근본적으로 일본 경제의 구조적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세계화시대에 걸맞은 국제적인 안목과 지도력을 가진 리더십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협조적인 정치권의 부재에서 연유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이러한 일본의 문제를 남의 일로만 보아 넘길 수 있는 처지에 있는가. 다행히도 1997년 말에 맞은 환란(換亂) 이후 우리나라는 일본이 그 동안 못한 일들을 많이 해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상대적으로 돋보이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우리나라는 환란을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구제금융을 받게되었고, 그 조건으로 금융과 기업부문의 구조조정을 강요당하게 되어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구조조정 시책들을 펼 수 있는 유리한 여건하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성장잠재력의 제고를 위해 금융.기업.노동.공공부문의 구조조정 노력이 자의반(自意半) 타의반(他意半)이 아닌 우리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지속돼야 한다는 데에 있다.

지금까지 추진해온 우리의 구조조정 노력은 주로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부실정리 등 과거유산 처리쪽에 집중됐다.

그러나 앞으로의 구조조정은 현안이 돼있는 일부 대기업과 부실 금융기관의 처리와 함께 공적자금 투입에 의해 사실상 국유화된 금융기관들의 민영화와 공공부문 개혁,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이 될 미래지향적 법과 제도의 도입,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노동시장 질서와 생산적 노사관계의 정립, 그리고 생산성 향상을 위한 신규투자의 가속화 등 한단계 더 높은 차원의 것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일들을 해낼 수 있는 정부의 흔들림 없는 리더십과 미래지향적인 정치풍토인 것이다.그래서 다가온 선거철이 두려운 것이다.

*** 흔들림없는 리더십 필요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의 반열에 있는 일본과는 너무나 다른 처지에 있다. 우리가 선진국을 향해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고 언젠가는 치러야 할 남북통일 관련비용 마련도 급한 일 아닌가. 따라서 우리는 10년이 아닌 1년도 허송할 수 없다.

경제 구조조정에 실패한 오늘의 일본과 이에 성공한 미국의 경우를 보며,무엇보다 먼저 우리 정치 지도자들의 생각과 행동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의 앞날도 낙관할 수 없다. 결국 우리 경제의 장래도 정치에 달려 있다.

사공 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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