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엄마는 수퍼우먼…교육 따라잡기 숨가쁜 학부모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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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요즘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신경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저학년 부모들은 학교 급식 당번.청소 당번.환경미화 당번 등 몸으로 뛰며 아이들을 뒷바라지한다. 맞벌이 가정의 부모들은 전문적인 급식 당번 대행 도우미로 나선 주부들에게 돈을 주고 부탁한다.

고학년 부모들은 중학교 진학에 대비해 성적 관리, 학원 정보 입수에 열을 올린다. 예체능 학습도 신경 안쓸 수 없다.

방학땐 더 바쁘다. 다음 학년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학숙제도 걱정이다.

학생들의 성적을 안매기면 아이들이 더 뛰어놀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은 일단 빗나가고 있는 셈이다.

엄마들의 극성은 수학 경시대회니, 한자.컴퓨터.수학 능력 인증시험 같은 비정기적 시험으로 옮아 갔다.

원래 어른들의 한자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한자 인증시험은 초등학교 아이들의 성적 매기기용이 됐다.

지난 11월 11일 한자 인증 시험을 실시한 '한국어문회'의 검정관리부 이광진 부장은 "한자 인증시험 응시자 가운데 55%가 초등학생이었다. 점점 초등생들의 응시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한다.

재량 학습과 체험 학습이 강조되는 것도 학부모들의 부담을 늘리고 있다. 스스로 기획해서 조사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의 손을 빈다.

아이 숙제는 곧 부모 숙제가 돼버렸다. 부모들은 "초등학교 3, 4학년만 돼도 대학 논문 수준의 리포트를 숙제로 써내야 한다"고 불평한다. 게다가 숙제도 거들어주지 못하는 데다 각종 정보도 부족한 맞벌이 엄마들은 초조하기만 하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시작된 7차 교육과정의 수준별 학습 도입도 한 몫을 거든다. 수준별 교육으로 학습에 흥미를 잃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지만 수준이 안되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학부모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초등 2학년 딸을 둔 주부 김희진(41.서울 상계동)씨는 "아들의 초등학교 시절 내내 인성 교육과 체험 학습이 중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조언과 성적 위주 현실 사이에서 갈등했다"고 털어놓는다.

이처럼 심화되는 경쟁 사회 속에서 아이를 잘 키우려는 초등생 부모들의 마음.몸 고생이 깊어가고 있다.

이와 관련, 교사들은 "한반에 40명이 넘는 아이들의 재량 학습을 감독할 만한 여력이 안된다. 시설도 안돼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지침도 없다. 열린 교육을 받아들이기엔 아직 이르다"고 주장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현상이다.

교육부 관계자들은 "학교 안에서 할 수 없는 부분을 체험 학습을 통해 보충하려는 정책의 방향은 전인적인 인재 양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아직 이를 담당할 학교 시설이나 인적자원 확보 등 인프라 구축이 안돼 있는 것이 현실임을 인정한다.

전문가들은 몸이 단 초등생 부모들에게 "지나친 조기 교육은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입을 모은다.

또 아이가 밤잠을 못자더라도 스스로 과제를 해결하도록 내버려둬 자립심을 길러주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중.고교에 재학 중인 아이들을 둔 부모들 일부는 "초등학교 때 놀게 한 아이들이 처음엔 적응을 못하는 것처럼 보여도 스스로 공부할 줄 알고, 성적도 더 높아진다"고 말한다.

세 아이들을 키운 얘기를 쓴 책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의 저자 박혜란씨는 "어린 시절 지나치게 학습을 강요하면 일시적으로는 성적이 오를 수 있지만 결국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다"며 "아이가 스스로 배우고 싶다고 할 때 가르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흥미를 갖는 부분부터 집중토록 해 그 부분의 재능을 키워주는 것이 좋은 전략이다.

박혜민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 좋은 학군 초등학교 찾아서 이사

내년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이용미(34.경기도 용인시)씨는 이사갈 집을 구하고 있다. 초등학교 학군이 첫번째 고려 조건이다. 찻길만 안 건너고 학교에 갈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초등학교를 잘 들어가야 좋은 중.고교에 진학할 수 있고 대학 가는 길이 쉬워진다고 한다.

*** 급식 청소 참관…툭하면 학교 호출

올해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이현주(35.서울 마포구 도화동)씨에겐 초등학생과 다름없는 생활이 시작됐다. 2주일에 한번씩 하는 학교 급식 당번과 청소 당번, 한달에 한번 있는 현장 학습, 학기에 두번 있는 참관수업, 거기다가 보조교사의 날까지. 공식적으로 학교에 가야 하는 날이 계속됐다.

*** 대리 숙제는 기본 가정교사까지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의 학교가 교구(敎具)사용 시범학교로 지정받은 올해 김희진(41.서울 구로구 구로동)씨는 아이보다 더 바빴다. 학교에서 자료를 받아다가 밤새 교구를 만들었다. 동네 준식이 엄마는 저녁까지 학교에 남아서 자료를 만들었단다. 아이 숙제가 엄마 숙제다.

*** 진학대비 학원 고르고 등록까지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둔 박경숙(40.서울 노원구 중계동)씨는 아이의 중학교 진학에 대비해 좋다는 학원을 물색하느라 바쁘다. 겨울 방학은 진학 준비의 사활이 걸린 시기다. 초등학교 6학년이면 벌써 특목고 준비반이 편성된다. 어딜 보내야 하나. 오늘도 정보 입수의 안테나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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