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자기 희귀작 어렵게 선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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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알짜배기 골동품은 재력 있는 개인소장가들이 품고 살기에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유명한 고미술 애호가인 윤장섭(성보문화재단 이사장)씨가 소장품을 털어 만든 호림(湖林)박물관(http://welcome.to/horim)의 특별전은 그래서 귀한 구경거리다.

'호림박물관 구입 문화재 특별전'은 13일부터 내년 2월말까지 이어진다. 월요일과 신정.설날은 휴관하며 개관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 설명회 시간에 맞춰가면 더 좋다. 02-858-2500.

호림박물관은 흔히 호암미술관.간송미술관과 함께 '3대 사립박물관'으로 불릴 정도로 소장품이 알차기로 유명한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개관 20년이라면 짧지 않은 세월인데 이번이 겨우 세번째 특별전이다. 지난 한해 동안 구입했던 수백점의 문화재 가운데 명품이나 학술적으로 의미가 있는 1백5점을 골라 내놓는다.

'고미술의 보고(寶庫)'라는 별칭에 걸맞게 내놓는 전시품들이 쟁쟁하다. 주력은 역시 박물관이 자랑하는 도자기, 그 중에서도 고려 청자와 이조 백자다.

가장 주목되는 작품은 12세기(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연리문잔(靑磁練理文盞.사진 위)과 청자퇴화당초문화분(靑磁堆花唐草文花盆). 지금까지 알려진 사례가 거의 없는 희귀작들이다.

찻잔이나 술잔으로 쓰였던 청자연리문잔(직경 10㎝)은 전세계적으로 10여점 정도밖에 없는 독특한 양식(연리문)으로 주목된다.'연리문'이란 청자를 만드는 흙과 백자를 만드는 흙, 그리고 철분이 많은 붉은 흙을 함께 적당히 버무려 두 번 구운 도자기를 말한다.

청자의 푸른 빛과 백자의 흰 빛, 그리고 붉은 흙의 검은 빛이 적당히 어울려 한 편의 추상화로 보인다. 청자퇴화당초문화분 역시 '퇴화'(청자에 흰 흙을 칠해 그림을 그린 도자기)라는 형식으로 희귀한 작품.

빠트릴 수 없는 명품은 청자양각연화문매병(靑磁陽刻蓮花文梅甁.사진(中))이다. 높이 35㎝의 당당한 품세에 섬세한 문양, 그리고 고려 청자 특유의 비색(翡色)이 잘 바른 유약에 은은하고 담담해 "고려 청자 제작기술이 최정상에 달한 시기의 수준을 보여준다"(이희관.호림박물관 학예연구실장)고 한다.

이들보다 조금 늦게 만들어진 청자상감모란문화병(靑磁象嵌牡丹文花甁)은 고려사의 굴곡을 말해주는 학술적 의미로 주목된다. 12세기말 무신(武臣)들이 정권을 잡은 이후 시기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어깨(목과 몸통을 연결하는 화병의 윗부분)가 크게 강조되고, 무늬도 크고 많아 무(武)의 이미지가 강하게 살아 있다. 이전의 은은한 귀족적 취향과는 크게 달라 시대상의 변화를 말해주는 듯하다.

백자로 자랑할만한 명품은 백자철화운룡문호(白磁鐵畵雲龍文壺.사진(上)).17세기 조선시대 작품으로 눈같은 흰색 바탕에 철분으로 흑갈색을 낸 용(龍)을 그렸는데,드물게도 높이 40㎝에 이르는 큰 항아리다. 바탕의 흰색은 조선조 문예부흥기(영정조 시대)의 담백함을 보여주며, 용을 구름 속에 숨긴 솜씨도 시대를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이밖에 10세기 전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백자도 여러 점 선보이는데, 중국에서 들어온 도자기가 한국화되는 과정을 확인케하는 의미가 적지 않다.이어 조선초 많이 만들어진 우리 특유의 분청사기(粉靑沙器)들도 수작이 적지 않은데, 분청사기를 만드는 제작 기법에 따라 전시함으로써 이해를 돕는다.

조선 후기의 나전칠기(螺鈿漆器)와 목기(木器), 조선말 매화그림으로 유명한 조희룡(趙熙龍)의 작품 등도 함께 볼 수 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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