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학생이 외면하는 대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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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금 우리 사회는 우리의 장래를 결정짓는 교육 문제로 하루가 멀다 하고 소란하기만 하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급변하는 사회상황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교육개혁의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보다는 빈번히 교체되는 교육부 장관이 취임할 때마다 무엇인가 새로운 업적을 쌓아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충분한 준비 없이 근시안적인 교육행정을 펼친 결과 때문인 점도 없지 않다.

*** 새 업적만 좇는 교육당국

정부가 정작 고급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의 심장인 대학원 교육의 향상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책적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이것에 대한 좋은 표본이 되고 있다.

몇년 전부터 국내에서 최고의 명예를 자랑하는 서울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명문대학들이 학문발전은 대학원 교육의 확대와 강화에 있다는 것을 판단하고 대학원 중심 교육을 표방하고 나섰지만 지금까지 충분한 여건과 내실을 정립하지 못했다.

그 결과 서울대 대학원마저 수시 및 정시 모집에서 정원미달 사태를 빚어내 대학사회는 물론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울대가 이 지경이니 여타 대학원의 형편은 오죽할까. 비록 여타 대학 대학원은 정원미달 사태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응시자들의 질적 수준의 급강하로 인해 개탄의 소리가 높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사상 초유의 정원미달 사태가 벌어진 부끄러운 현상을 두고 정부와 대학 당국은 그 원인을 경제적 불황과 'BK21 프로젝트'의 부작용과 같은 외부적 요인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지금까지 우리 대학원이 잠재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가 외부적으로 표출돼 나타난 슬픈 현상으로 진단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동안 국학 이외의 분야에서 국내 박사학위와 외국 박사학위를 지나치게 차별한 결과 국내 대학원생들은 힘든 대학원 공부를 마친 후 대학 강단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을 완전히 상실해 왔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학생들은 경제적 여건만 허락한다면 누구든지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외국으로 나갔고 또 나가려고만 한다.

학생이 없는 대학원에서 학문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실제로 자연과학 분야의 경우 대부분의 교수들은 책임감과 창의력을 갖고 연구할 수 있는 대학원생이 있어야만 훌륭한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인문과학의 경우도 텍스트로 연구한다지만 교실에서 지적인 담론을 나눌 대상이 없다면 더욱더 큰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일본의 경우 외국에서 학위를 취득한 인력에 거의 의존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서구 여러 나라에 버금가는 수준의 학문적 열매를 맺어 왔다. 굳이 외국에서의 연구경험이 필요하다면 교수 채용 이후에 '포스트 닥터'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외국에서 다시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있어 우리의 경우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만약 우리 정부와 대학 당국이 지금과 같이 국내에서 자신들이 키운 제자들을 계속 외면하게 된다면 대학교수들은 대학원생들을 자신의 생존을 위한 희생양으로 전락시키는 것과 다름없는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 희망.동기 부여 대책 필요

이러한 비극적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학문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능력있는 극소수의 학생들이라도 엄격하게 선발해 국내 대학원에 유치한 후 그들에게도 대학에서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는 희망과 동기를 부여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 교육당국이 아무리 대학원 중심 교육 지향을 주장한다 해도 현실적으로 대학원 공동화 현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자칫 우리 대학의 '근친번식'을 옹호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는 훌륭한 학생들의 완전한 두뇌유출을 막고 우리나라 대학원에도 능력있는 학생들을 머물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위한 간곡한 바람이다. 대학원 교육과 그 연구의 현장은 사회발전을 위한 숨쉬고 깨어 있는 요람이 돼야만 한다.

李泰東 (서강대 교수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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