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겨울방학이 싫은 결식 아동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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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오는 18~23일, 전국의 초등학교가 겨울방학에 들어간다. 중.고등학교도 방학이다. 이제 곧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와 이어지는 새해 명절, 그리고 겨울 캠프 등으로 일반 어린이들은 가슴이 설레지만, 전국의 17만 결식 어린이들에게 겨울방학은 견디기 힘든 마(魔)의 계절이다.

추워서 맘대로 나가 놀 수도 없고 먹을 것도 마땅치 않다. 대부분 날품팔이 노동자인 아버지는 일을 못해 집에서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둘러 이로 인한 가정불화가 어린이들을 괴롭히고 슬프게 한다. 1990년대 이후 빈민지역에 크게 늘어난 '엄마의 가출'로 인한 가족해체 현상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그래서 집이 싫고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숙제를 하고 간식도 먹을 수 있는 동네 공부방을 찾는다. 또 부모의 이혼이나 사별.가출 등으로 오갈 곳 없는 어린이 중 일부는 4,5명 많으면 10명의 어린이가 선생님들과 함께 사는 그룹 홈에서 생활한다. 전국에 이런 공부방이 줄잡아 3백여개, 그룹 홈이 약 1백50여 군데를 헤아린다.

공부방이나 그룹 홈은 빈민가 어린이들의 딱한 처지를 본 뜻있는 이들이나 종교계통의 사람들이 방 한두칸을 빌려 시작한 것이 대부분이다.따라서 사철 어두운 지하방이나 다락방 등 환경이 열악한 곳이 많다. 그래도 그곳에 다니는 아이들은 갈 곳 없이 추운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보다 행복하다.

부모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 대상자인 가정의 어린이들은 그나마 학교에서 무료급식의 혜택을 받고 겨울방학에도 근처 식당의 식사 쿠폰이나 농수산물 상품권을 받아 급한 허기증을 달랠 수가 있다. 그러나 공부방 어린이들의 70% 정도가 주민등록이 제대로 돼있지 않거나 부모가 주거불명 등의 이유로 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웬 결식아동이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아직도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많습니다. 가난해서뿐 아니라 부모가 밥벌이를 하느라 제때 먹일 수 없거나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못먹고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이 많아졌어요." 서울을 비롯한 전국 28군데 공부방을 지원하고 있는 부스러기 선교회 강명순 목사의 얘기다. 추우니까 비좁은 공부방에서 온종일 부대끼던 아이들이 PC방이나 오락실을 드나들게 되면 자칫 유혹에 빠지고 문제행동.가출 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들 공부방이나 그룹 홈은 대부분 개인 후원금과 사회복지 관련 단체들의 지원금으로 운영돼 어린이.교사 모두 형편이 무척 어렵다. 공단지역 안산에서 그룹 홈 10개와 공부방을 열고 있는 '들꽃 피는 마을'의 유승권 교사는 말한다." 매달 1만원 정도를 내는 3백명의 후원자 중 대부분이 빠듯한 생활을 하는 봉급자나 영세상인들입니다.좀 더 여유있는 층의 참여가 아쉬워요."더 큰 사회문제의 예방차원에서, 같은 시대를 사는 어른들의 의무로, 이웃과 나누는 기쁨을 위해서도 우리는 가진 것을 고통받는 이웃과 나누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박금옥(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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