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당신께 쓰는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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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세월의 흐름 속에 터득한 작은 진리 하나. '몸의 거리는 마음의 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육체는 한낱 움직이는 어떤 것일 뿐이고, 정말 같이 있다고 느끼는 그 마음은 몸이 아무리 멀리 있어도 멀어질 수 없음을 느낍니다. 당신을 보내며 애들에게 이렇게 말했죠.

"아빤 하늘나라로 가는 엘리베이터 타고 여행을 가셨다"고. 그래요. 당신이 그냥 멀리 여행을 떠나신 거라 믿기에 혼자라고 느끼지 않는답니다."

"사랑하는 사람. 당신이 얼마나 많은 일로 힘들었을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당신이 가고나니 하다 못해 공과금 내는 일도 어찌나 신경 쓰이는지. 전 당신을 너무 믿었나 봐요. 당신이 슈퍼맨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당신이 제게 기대고 싶었을 순간도 많았을 거란 걸 전 몰랐어요. 그래서 고독했을 당신을 생각하면 정말 마음 아파요. 어떻게 견디셨나요? 이제는 그러지 말아요.당신이 보고 싶어요."

-남편을 잃은 아내의 편지

"좋은 곳에 계실 당신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그리움이란 단어가 이토록 내 가슴을 녹아 버리게 하고, 세상을 허허롭게 보이게 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당신은 내 뼈 속 어둠에서 핀 꽃이었습니다.

밝게 피어보지도 못한 꽃, 그래서 더욱 서러운 당신의 사랑입니다. 나는 당신을 절절히 그리워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합니다."

"여보! 너무 보고파서 또 편지를 띄운다. 꼭 한 번이라도 당신을 보고 싶은데 꿈 속에서도 만날 수가 없구나.

어린 핏덩이를 남겨두고 떠나는 당신 원망도 많이 했었어. 하지만 떠나는 당신의 마음이야 오죽 했겠어. 이젠 걱정말고 편히 쉬어. 내가 우리 아이 다 키워 놓고 당신에게 갈께. 사랑해, 그리고 보고 싶어."

-아내를 잃은 남편의 편지

우리가 흔히 영원한 이별이라고 하는 '죽음'. 그러나 적잖은 부부들 사이에서는 죽음 뒤에도 사랑이 계속되고 있었다.

며칠 전 남편과 함께 찾았던 경기도 고양시 벽제리에 있는 '추모의 집'과 경기도 파주군 용미리에 있는 '제 2 추모의 집'에는 사별 후에도 먼저 보낸 남편이나 아내를 잊지 못하는 사연이 가득했다.

그곳에 비치된 '고인에게 쓰는 편지'라는 제목의 노트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 남은 자의 처절한 고통과 탄식,연민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벽제 '추모의 집'에서 일하고 있는 엄대중씨는 "언젠가부터 눈물 젖은 편지를 써서 유골함 틈새에 꽂아놓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 따로 노트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1주일에 한 번씩 사연을 모아 정리해 놓는다"고 했다.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남긴, 하늘에 있는 여보.당신에게 보낸 편지에 왈칵 눈물이 솟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우리 부부 사이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곁에 있어준 것을 고마워하는 눈빛이 오갔다.

"곁에 있을 때 아끼지 않으련다.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속으로 몇 번씩 되뇌였다.

또 다시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때, 아내 또는 남편이 미워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곳을 둘러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이들 추모의 집이 발간한 '고인에게 쓰는 편지'는 2권의 책(1편:『눈물의 편지』, 2편:『새가 되소서 하늘을 나소서』)으로 출판됐다.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장묘사업소에서 운영하는 사이버 추모의 집

(http://www.memorial-zone.or.kr)의 '하늘나라 우체국'게시판에도 애틋한 사연들이 계속 늘어가고 있다.

박복남(중앙일보 주부통신원,bnp50@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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