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의 '지네와 지렁이'…위태로운 국가미래 풍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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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4면

중진 극작가 오태석(61)과 그에 비하면 한참 '애송이'인 신예 극작가 박수진(29).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신작을 낸다.

오씨는 '지네와 지렁이'를 자신이 이끄는 극단 목화의 이름으로 공연하며, 박수진은 '영광의 탈출'을 극단 미추.예술의전당 공동 제작 공연으로 선보인다.

두 사람은 오씨가 서울예대 극작과 교수로 있을 때 스승과 제자로 만난 적이 있다. 그래도 동가(同價)로 소개하는 이유는 두 작품이 지향하는 묵직한 주제의식의 유사성에서다. 또한 두 작품은 오늘의 유력한 극작가가 보는 '한국 현대사(회) 읽기'여서 비교 대상의 가치는 더하다.

오씨는 자유로운 상상의 미래담으로 화두를 꺼낸다. 지금으로부터 9년 뒤인 2010년. 이땅이 일본의 마수에 넘어간 국치(國恥)의 해로부터 1백년이 되는 시점이다. 극작.연출의 '노(老)대가' 오씨는 이 가까운 미래를 보여줌으로써 오늘의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효과를 노린다.

형식은 전통의 산대(山臺)놀이다. 이유가 있다. 기득권(세력)에 대한 풍자와 조소가 특징인 이 유희적인 형식을 끌어들여 비관적인 주제도 전혀 딱딱하지 않게 보여주겠다는 뜻을 담았다. 사실, 작품의 전망도 온통 잿빛이어서 형식까지 답답했다간 탈이 나기 십상이다.

2010년, 이땅은 오염과 테러.독가스.장기매매가 난무하는 복마전이다. 친일(親日).이념 갈등.학벌 지상주의의 청산도 여전히 요원하다. 이런 조국을 떠나는 국민들의 엑소더스. 이러다 보니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로워 일본의 힘에 다시 지배당할 처지에 놓였다.

"세상이 '뒤집어진 풍뎅이' 마냥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이런 답답함을 연극으로라도 풀어보자는 거다. 갖은 에피소드를 두서없이 모아 펼쳐보임으로써 '이열치열'한다고나 할까. 관객이 시원찮은 그 몰골 속에서도 뭔가 꿈틀거리는 게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이 작품은 성공한 셈이다."

결국 연극은 '해학으로 풀어낸 이 시대의 악몽'이라는 표현이 맞다. 오씨는 이런 액땜을 통해 이땅을 지켜나갈 '꿈틀거리는 힘'을 젊은이들에게서 찾고 있다. 미물인 지네와 지렁이는 인간사와 함께 한 그 습성상 연극의 주요 등장인물이요 메타포로 중요한 기능을 한다.

정진각.김병옥.황정민 등 목화, 즉 '오사단'의 대들보들이 총 출동한다. 오는 20일~2002년 2월 17일까지 아룽구지 소극장.

(http://www.mokwha.com)

02-745-3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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