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률 미국만 다소 희망…일본· 독일은 아직 막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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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미국 경기가 바닥을 친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런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노동시장을 보면 아직도 썰렁하기만 하다.

지난 7일 발표된 11월 미국 실업률도 전달의 5.4%에서 5.7%로 껑충 뛰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경우 내년 봄께 경기가 회복국면에 접어든 후에야 고용 관련 지표에도 봄기운이 번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멎지 않는 감원바람=컴퓨터 소프트웨어 관련 매뉴얼을 만드는 미첼 레미어(28)는 19개월 전 닷컴 호황기 때 고향인 덴버에서 뉴욕으로 스카우트됐다. 그러나 그후 무려 네곳의 직장을 전전하다가 최근 실업자 신세가 됐다. 네번째 직장은 1주일 만에 그만둬야 했다.

지난달 미국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33만명에 달했다. 올 들어 현재까지 포브스지(誌)선정 5백대 기업의 감원 규모는 1백만명에 달한다. 실업수당 수혜자도 이미 4백만명을 넘은 상태다.

정보기술(IT)업계가 올 초부터 감원을 선도하더니 금융.제조업이 뒤를 이었고 9.11 테러사태로 항공.관광을 비롯한 대부분 업종이 감원 태풍에 휩싸이게 됐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내년 말까지 2천4백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며 항공.관광산업에서만 9백만명 가량이 실직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하버드 법대의 마크 웨버 고용상담실장은 "경기 불황으로 기대치가 낮아진 때문인지 학생들이 요즘은 일자리를 가리지 않는다"면서 "초봉이 얼마냐를 까다롭게 따지던 과거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일본도 이에 못지 않다. 일본 NTT는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18만여명이던 종업원을 12만여명으로, 6만여명이나 감원했다. 그런 NTT가 다시 내년 봄 10만명을 자회사로 내보내기로 했다. 사실상의 감원이다.

10월 실업률은 5.4%로 2개월 연속 최고수준에 보였다. 최근 아사히(朝日)신문 조사에 따르면 일본 대기업의 절반 이상이 3년 내 감원을 계획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실업자수가 현재의 3백70만명에서 올 겨울에는 4백만명을 넘길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멘스.다임러 크라이슬러.도이체 포스트 등 1만명 이상 감원하는 기업이 속속 나타나고 있는 반면 내년에 신규고용을 계획 중인 대기업은 BMW 등 3개뿐이란 사실이 심각성을 보여준다.

◇ 실업 터널의 끝은=내년 초까지는 미국 실업률이 상승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미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고 있는 점을 감안해 실업률은 조만간 6%대에 오르며, 최악의 경우 내년 여름께 6.5%까지 갈 것이란 전망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소비심리가 조금씩 살아나는 등 경기 회복 신호가 나타나고 있어 내년 봄에는 실업사태가 진정되리라는 관측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월간 경제동향 조사기관인 블루칩 이코노믹 인디케이터가 경제학자 5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 실업률은 내년 1분기 6.1%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됐다.

가장 가까운 경기침체기였던난 90~91년 중에는 실업률이 7.8%에 달했었다.

워코비아 증권의 마크 비트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감원이 발표만 됐고 아직 실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를 감안할 때 내년 1월께 실업률이 절정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호에서 "기업들의 과잉재고가 점차 해소됨에 따라 생산활동이 활발해지고 고용사정도 곧 개선될 것"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일본은 경기회복 시기를 점치기 어려운 만큼 실업사태의 끝도 내다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닛코 샐러먼 스미스 바니의 이코노미스트인 사토 유카리는 "내년 중반까지 일본 실업률이 6%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독일 노동청은 내년 평균 실업자수가 3백90만명으로 올해(평균 3백85만명)를 웃돌 것이라고 분석했다.

◇ 대책=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더 많은 실업을 막아야 한다"며 1천억달러의 경기부양안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의회에 촉구하고 있다. 이 안에는 실업수당 지급을 현행보다 13주 늘리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안은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은 무난히 통과했으나 상원에서는 다수당인 민주당이 실업수당 지급대상 등을 대폭 확대하자며 제동을 걸고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본격적인 실업대책의 시행이 늦어지고 있다.

일본은 재정개혁을 위해 예산지출을 억제한다는 원칙 때문에 정부차원의 실업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재훈.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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