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겪은 6·25 아픔 전후세대도 알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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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6·25전쟁은 역사가 아니라 현실이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20일 오후 6시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 19층 신세계홀. 1958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동기생 38명이 뜻 깊은 모임을 열었다. 대부분 일흔을 넘긴 우리 사회의 원로들은 60년 전, 초등학교 5∼6학년이던 시절 체험한 6·25전쟁에 대한 기억을 저마다 풀어 놓았다.

1958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동기생들의 6·25전쟁 회고담을 모은 책 『6·25와 나』 출판기념회가 20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최명 서울대 명예교수, 송헌일 전 숙명여대 교수, 이하우 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사무총장, 황영하 전총무처 장관, 이건영 전 한일시멘트 부회장, 한승준 전 기아자동차 부회장, 이대황 토탈해운 사장,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 김경엽 전 삼신 올스테이트생명 대표이사, 이동호 재미 변호사. [안성식 기자]

“6·25가 일어난 지 어언 60년, 지금도 나는 잊을 수 없는 아픈 상처를 안고 산다. (…) 나의 선친은 6·25 발발 당시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 소재 산림국 산하 강릉 영림서의 현지 관리소 소장이었다. (…) 후퇴하던 인민군 부대가 야음을 틈타 면소재지를 급습, 선친을 큰 길로 끌어내 참혹하게 타살(打殺)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김기수 전 국회의원)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용인을 거쳐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 어머니는 막내를 낳고 얻은 산후별증이 도져서 무척 힘들어하였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나는 막내를 업고 걸었다. (…) 8월 삼복더위에 중부 고원지대인 보은·옥천·황간·추풍령을 거쳐 대구까지 걸어간 일은 지금도 기적 같다.”(김경엽 전 삼신 올스테이트생명 대표이사)

이 자리는 신간 『6·25와 나』(까치)의 출판기념회이기도 했다. ‘서울법대 58학번들의 회고담’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다. 38명의 서울법대 동기들이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명 서울대 명예교수와 이하우 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이 대표로 책을 기획·편집했다. 최명 교수는 “6·25전쟁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라며 “6·25를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로서 전쟁을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직접 겪은 전쟁의 아픔을 남기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하우 전 사무총장은 “60년 전 초등학교 5∼6학년의 눈에 잡힌 잡티 없는 전쟁의 기록이자 남북한의 대치상황을 무시하는 행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라며 “피란촌에서 빵 한 조각을 아껴 나눠주셨던 우리의 어머님, 아버님께 바치는 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인민군과 국군의 전세가 바뀌는 과정에 부모 형제가 죽임을 당하고, 하루아침에 선생님이 바뀌며 배우는 내용까지 뒤바뀌었던 경험을 당사자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 현역에서 은퇴한 70대의 원로들은 소년시절의 상처만을 아파하지 않았다. 역사의 비극이 마치 남의 일처럼 잊히는 세태를 더욱 안타깝게 여겼다.

58년 서울법대(법학과·행정과) 입학생은 300여 명이었다. 이미 작고한 이가 적지 않다. 원고를 쓸 형편이 되는 사람만 추리니 38명이 됐다고 한다. 이들의 개인적 체험담을 모아놓으니 우리 현대사가 되살아난다. 초등학생의 눈에 비친 전쟁은 참혹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이들은 전쟁 중에도 학교에 다녔고 미래를 꿈꿨다.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된 배경이다. 그렇게 역사는 기억되고 있었다.

글=배영대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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