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테러 EU 단일영장제 막판 삐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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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유럽연합(EU)의 야심작, 역내 단일영장 제도의 도입이 결승점 앞에서 삐걱대고 있다. 이탈리아의 '몽니' 때문이다.

EU 15개 회원국 중 14개 회원국들이 테러를 비롯한 32개 범죄에 단일영장을 적용키로 이미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유독 이탈리아만이 이를 6개 범죄로 제한할 것을 주장하며 딴지를 걸고 있는 것이다.

단일영장 제도란 관련국 사이에 범인 인도절차 없이 역내 어디서든 용의자의 체포.구금.압송을 가능케 한다는 것. 이는 EU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반테러 조치들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다.

1996년 EU협정은 테러 용의자의 경우 수배국에 자동 인도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상당수 국가에서 국회비준을 받지 못해 실행되지 못했다.

테러에 대한 법률적 해석이 국가마다 다른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하지만 9.11 테러 이후 실현 움직임에 가속이 붙었다. 테러 주동자들이 유럽에서 테러를 준비했음에도 불구, 국가간 협력이 부족해 테러 예방에 효율성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자성 탓이다.

테러행위를 "공포조성을 통해 공공질서를 교란할 목적으로 저질러진 보통법 위반"으로 정의하는 포괄적 공동개념도 수립했다. 여기까지 온 상황에서 딴소리를 하는 이탈리아에 대해 다른 회원국들은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들은 이탈리아의 태도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사적 이해와 관련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억만장자 기업가인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과거 기업운영과 관련된 각종 불법행위 혐의로 조사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탈리아가 횡령과 부패 등 범죄를 단일영장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이같은 의심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물론 이탈리아 정부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비리를 조사했던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전 검사는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탈리아를 유럽에서 고립시키고도 남을 인물"이라고 비꼬았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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