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경씨 단편집 '숨쉬는 새우깡' 내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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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문학에 순정을 바친다며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게 자랑할 일은 아니란다. 뭐 그렇다고 돈이 많으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소설가 최재경(30.사진)씨는 돈 떨어질 때가 잦지만 "떨어지면 일하고 벌면 맘껏 노는 게 특기"라고 했다.

그의 새 소설집 『숨쉬는 새우깡』(민음사,8천원)에는 사이사이 틈나는 시간에 문예지에 발표했던 여덟편의 단편이 묶여있다.'틈나는 대로'라고 해서 같잖게 보면 오산이다. 틈과 틈 사이에서도 진지해질 수 있는 게, 흔한 말로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게 젊음의 미학 아닌가.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게 하는 따뜻한 시선,그 웃음을 지탱하는 발랄한 문체, 거기서 비롯되는 속도감 있는 구성은 그의 소설의 미덕이다.

표제작인 '숨쉬는 새우깡'은 새우깡을 개발하다 죽은 남자의 영혼이 그 때 태어난 여성 화자에 깃들인다는 스토리 아래 두 세대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다. 새우깡의 존재가 너무도 당연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의 비유를 통해 세태를 짚어내는 방식이 능수능란한 이야기꾼의 재능을 엿보게 한다. 이 소설은 1999년 한 영화사의 시나리오 창작 지원금 수상작으로 선정돼 영화화가 추진되고 있다.

작가는 "존재의 깊이를 길어올리면서도 웃음을 주는 소설이 부족한 게 우리 문학의 빈자리 아닌가"라고 운을 뗐다. 물론 그가 영화.TV 등의 영상 매체가 주는 웃음에 우위를 두는 건 아니다. "그동안 희곡 빼놓고 안 써본 장르가 없다. 결국 소설이 제일 넓다는 걸 깨달았다. '소설이 끝났다'는 건 소설의 어떤 트렌드가 잘 안 먹힌다는 얘기일 뿐이다. 다큐멘터리 소설 등 덤벼볼 만한 영역이 쌔고 쌨다."

일상의 세목에 대한 꼼꼼한 시각과 설교조의 윤리적 평가에 앞서는 상상력에는 일단 후한 점수가 매겨진다. '어디 가니?'는 판에 박힌 상투어에 얽힌 일상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이기심을 들춰내고 '사육제의 하루'는 남편에게 우발적으로 살해된 아내의 운명에서 인간의 우매함과 사랑의 비정함을 그려낸다.

대학 시절 '4210301' '먼지 낀 세상에' 등 그룹 015B의 인기곡 노랫말을 썼다거나 『월간조선』에서 프리랜서 르포작가로 일하며 부랑아에서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났던 작가의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연인.부부.부모 등 가깝고 구체적인 인간관계, 즉 '가정 비극'의 세계를 탐구하는 소설은 TV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통속적인 것들의 공허함'에 빠지기 쉽다"는 지적(소설가 이인화)은 작가가 넘어서야 할 부분이다. 다시 말해 '줄거리로 요약되는 게 다 소설은 아니다'라는 명제 앞에 당당해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작가는 1995년 『상상』으로 등단한 뒤 장편소설 『반복』(1996)을 발표했으며 현재 인터넷 서점 리브로에서 근무하고 있다.

글=우상균.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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