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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어린이 구호에 한국인들도 동참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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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14세의 헬렌은 말라위 한 시골마을에서 사촌동생 존과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1990년 부모님이 에이즈로 사망하자 이모 집으로 옮겨와 지냈지만 두 분도 에이즈로 돌아가시고 역시 고아가 돼버린 사촌 존과 함께 집안의 유일한 어른이신 할머니와 어렵게 지내고 있는 것이다. 헬렌에게 최근 기쁜 일이 생겼다. 월드비전 후원자의 도움으로 매일 30㎞를 오가야 하는 고된 길이지만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고 생계에 필요한 지원도 받게 된 것이다.

헬렌과 같은 에이즈 고아 사례는 이제 아프리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나마 조부모와 살 수 있는 경우는 조금 나은 편이다. 잠비아의 리처드는 여덟살 때 에이즈로 부모를 잃고 두 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옥수수 심기, 진흙벽돌 만들기, 화장실 구덩이 파기 등의 노동현장으로 내몰린 경우다.

지금 전 세계에는 1400만명에 달하는 15세 미만의 아동들이 에이즈로 부모를 잃었고 2010년에는 아프리카 아동 8명 중 1명은 에이즈 고아가 될 것이라는 보고가 있다.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은 임신 중 감염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에이즈 감염자가 돼버린 아이들의 수도 300만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에이즈 때문에 가장이나 혹은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실직하게 되면 가족 전체가 고통받게 된다. 가장의 실직으로 인한 가난은 자녀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게 하고 자녀들을 영양실조로 몰고 간다. 에이즈로 인한 국가 사회적인 피해는 더욱 엄청나다. 한창 일할 15세에서 44세까지의 성인들이 에이즈에 감염됨으로써 식량생산 및 소득에 차질을 빚고 있고 이들이 그동안 쌓아온 모든 지식과 기술은 사장돼 버리고 만다. 교사의 숫자가 줄고, 취학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문맹률도 높아진다. 높은 사망률 때문에 평균수명도 줄어든다.

전 세계는 에이즈에 대해 왜 이렇게 과민반응을 보이는 걸까? 에이즈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3명 중 1명은 사람 면역부전 바이러스(HIV)에 감염돼 있고 아시아지역에만도 HIV 양성반응자의 숫자가 720만명에 달하고, 인도는 HIV 양성보유자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나라가 되었으며, 가까운 이웃나라 중국도 이미 그 수가 100만명을 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04년 9월 현재 누적 감염자 수는 2994명이며 하루 1.7명꼴로 에이즈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공식적인 통계일 뿐이다.

그렇다면 대처방안은 없는 것일까? 에이즈 감염이 확산되지 않도록 성공을 거둔 국가들이 취한 방법은 성 문제를 공론화하고 더 이상 에이즈에 대해 침묵을 지키지 않도록 도전장을 낸 경우였다. 유엔기구 및 여러 비정부기구(NGO)에서는 HIV/에이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월드비전도 2000년부터 '희망 프로젝트(HOPE Initiative)'라는 이름으로 에이즈 예방과 퇴치, 감염자와 그 가족을 위한 지원을 해오고 있으며 에이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변화를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에이즈 사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에이즈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에이즈 감염자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건 육체적 통증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던져지는 사회적 차별과 편견의 돌이다.

지금 전 세계에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 수보다 조금 적은 4200만명의 사람들이 에이즈의 화살에 맞아 사망의 그늘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나 혼자만이 안전을 보장받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닌, 우리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해야 나의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나의 안전을 위해 건전한 성 습관을 갖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수직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4유로짜리 약물을 구입할 수 없어 태어나면서부터 에이즈 감염자가 돼야 하는 아프리카의 어린 생명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신희경 월드비전 해외사업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