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터널 공사 재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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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뇽 소송'으로 알려진 경부고속철 천성산 구간 공사금지 가처분 사건에 대해 고등 법원이 1심대로 각하 및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한국철도시설공단은 3개월여 동안 중단되고 있는 고속철 터널공사를 30일부터 즉각 재개하기로 했다. 반면 환경단체는 법원 결정에 불복, 대법원에 재항고하겠다고 밝혔다.

부산고법 제1민사부(재판장 김종대 부장판사)는 29일 오전 '도롱뇽'과 '도롱뇽의 친구들', 미타암.내원사 등이 각각 한국철도시설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천성산 구간 공사착공금지 가처분 '에 대한 항고심에서 각하 및 기각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터널 부근의 지하수맥과 무제치늪이나 화엄늪의 직접 수원이 되는 지하수 내지 지표수는 신청인들의 주장과 달리 상호 연결돼 있지 않을 개연성이 훨씬 커 터널공사가 무제치늪이나 화엄늪 등의 고산 늪지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터널 길이가 13㎞를 넘는 장대터널이고, 시공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지질상태를 만나거나 자체 기술의 한계 및 시공상 실수로 붕괴 위험이 있다고 신청인들이 주장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붕괴 발생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발생 개연성에 대한 소명이 현저히 부족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터널 공사중단으로 고속철 완전개통이 미뤄지면 연간 2조원에 가까운 사회.경제적 이익이 감소되는 등 막대한 공공의 이익이 침해된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재판부는 도롱뇽을 원고로 내세워 신청한 부분에 대해 "도롱뇽 등을 포함한 자연 그 자체에 대해 당사자 능력을 인정하는 현행 법률이 없고 이를 인정하는 관습법도 존재하지 않아 도롱뇽의 신청 자체가 부적법하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천성산 2개 공구(길이 16㎞)에서 ▶노선 재검토 문제로 2003년 3월부터 9월까지 6개월▶공사금지가처분 소송 문제로 2004년 8월 26일부터 11월 29일까지 3개월여 등 모두 9개월여 동안 공사가 중단됨에 따라 인건비.장비 임대료 등으로 162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주장했다. 환경단체 측은 "법원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공사 재개를 막기 위해 대법원에 재항고하는 한편 모든 시민.환경단체와 힘을 합쳐 싸워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재판부는 "법리적인 문제만 놓고 결정을 내린다면 처음부터 환경단체가 승소하기 힘든 소송"이라며 "그래서 환경단체의 주장을 수렴한 조정안을 내놓았는데 환경단체가 이를 거부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부산=정용백 기자

[뉴스분석] 환경단체 무리한 반대 사회적 손실'자충수'

'도롱뇽 소송'에 대한 법원의 각하.기각 결정은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

부산고법이 지난 15일 내놓은 공사 재개와 현장조사를 병행하자는 조정안을 지율 스님이나 도롱뇽소송 시민행동 측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터널굴착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보다 산술적으로 예상가능한 경제적 손실을 중시한 셈이다. 이날 '도롱뇽 소송'이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정부나 환경단체 모두 되돌아 봐야 할 부분이 있다.

단식과 소송으로 이어진 지루한 논란이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노선 재검토 공약을 제시한 것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충분한 검토 없는 공약.정책은 지양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 지난해 환경부와 환경단체가 천성산 굴착 조사에 반대, 천성산 터널이 무제치늪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할 기회를 놓쳤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래서 환경단체도 무리한 반대로 인해 사회적 손실을 가져오고 스스로의 힘도 약화시켰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환경단체가 '환경 비상시국'이란 이름 아래 반(反)환경정책 백지화를 정부에 요구하고 단식 농성까지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합리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한 개발과 보전을 둘러싼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확인시켜준 소송이었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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