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미·이스라엘의 '똑같은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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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6월 1일 저녁 이스라엘의 해변도시 텔아비브. 한 나이트클럽 앞에서 자살테러범이 폭탄을 터뜨렸다. 젊은 남녀들의 머리.팔.다리가 사방으로 튀었다.

이 참혹한 테러로 21명이 죽었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는 테러를 비난하면서도 양측에 정전을 촉구했다. 그로부터 6개월. 지난 주말 테러가 다시 터졌다. 사망자는 26명으로 비슷했다. 그러나 이번엔 부시의 말이 달라졌다. 백악관 성명에서 '이스라엘의 자제'란 표현이 사라졌다. 오히려 부시는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인정한다고 대변인은 말했다.

부시는 간접적으로 이스라엘의 보복에 동참하고 나섰다. 팔레스타인 테러단체 하마스에 자금을 지원한 혐의가 있다며 미국 내 이슬람 자선단체의 자산을 동결한 것이다.

반년 사이에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테러가 거듭되니 대응강도가 세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이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동안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측 희생도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변화는 9.11 테러가 초래한 것이다. 무역센터 붕괴를 지켜본 미국인들은 이스라엘인에게 감정이입(感情移入)을 느끼는 것 같다. 상당수 언론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동병상련(同病相憐)을 얘기한다.

CNN 앵커 애런 브라운은 "이번에 죽은 이스라엘인의 숫자는 미국으로 치면 1천2백명"이라고 환산했다. 워싱턴 포스트 사설은 "이스라엘이 당한 것은 미국이 겪은 것과 똑같이 끔찍하다"며 '테러응징 공격'을 지지하고 나섰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는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의 말을 인용했다. "미국인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 이스라엘인도 테러와 전쟁 중이다. 그것은 똑같은 전쟁이다."

동병상련의 열풍 속에는 다른 목소리도 있다. 샌디에이고 유니언 트리뷴의 칼럼니스트 제임스 골즈보로는 대 팔레스타인 비밀작전 경력을 들어 베긴.샤미르.샤론 등 이스라엘 전.현직 총리를 테러리스트라고 암시했다.

특히 샤론 총리는 1982년 레바논 침공 당시 팔레스타인 난민 수백명을 학살한 사건에 간접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소수의 이런 지적은 묻히고 있다.

앞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흡사한 '테러피해국조약기구'같은 안보공동체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김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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