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학원 힘겨운 홀로서기 '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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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997년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정책에 따라 국제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 등 9개 대학에 설립한 국제대학원이 기로에 섰다.

5년간 1천억원에 달했던 정부 지원이 종료됨에 따라 내년부터 독자적인 자립방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원장 유장희).연세대 국제대학원(원장 문정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이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설립 첫해 10대1의 경쟁률을 보이는 등 관심이 쏠렸던 국제대학원은 최근 정원도 채우지 못하는 등 존립이 위협받고 있다.

설립 당시 예정보다 많은 9개 대학으로 갑자기 늘어나는 바람에 여건이 채 준비돼 있지 않았거나 정부지원 종료 후 재원마련이 불가능한 대학 등에도 대학원을 설립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대학의 경우 정부 지원금을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투자하기보다 장학금과 외국 연수비, 심지어 노트북 지급에 쓰는 등 무분별하게 사용해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원금을 연말에 한꺼번에 주는 정부의 지급방식도 그런 행태를 부추긴 측면이 있었다. 설립취지에 맞춰 인재를 육성하는데도 성공을 거뒀다고는 할 수 없다.

지난해까지 전체 졸업생 7백61명 중 국제기구나 외교부 등 국제외교 분야에 취업한 경우는 5.4%(41명)에 불과해 국제전문인력 양성이라는 애초의 취지를 무색케 했다. 대신 일반 기업체 취업자가 50.6%(3백85명), 유학.진학 15.1%(1백15명) 등 취업이나 유학의 방편이 되어왔다.

자립을 위한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곳은 연세대와 이화여대다. 연세대의 경우 1백억원의 기금(Matching Fund)을 조성해 자립이 가능할 뿐 아니라 입시 경쟁률도 5대1에 이른다.

학생의 3분의 1 정도가 외국인이어서 실제로 영어로 강의가 이뤄지는 등 국제기구.외교통상과 관련한 교육의 질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화여대는 대응기금 1백30여억원 조성과 함께 국제학부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켜 존립기반을 확보한 경우다. 지난해 30명의 학부생을 뽑은 데 이어 올해는 50명을 뽑을 예정이다. 타 학과의 정원을 줄이는 대신 국제학부를 만듦으로써 명실공히 학부.대학원 체제를 갖추게 됐다.

학과 정원변경이 자유롭지 않은 현실에서 '국제학부'란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대학원의 재정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국제관계학을 키우겠다는 대학의 전략적 선택.지원의 결과다.

서울대 국제지역원(원장 조동성)의 경우 아직 논란이 많다. 애초에 관련 학과들의 반대로 이들 학과의 교수들이 겸임하는 '학제간 협동과정'으로 규정되었고 본부 대학원장 명의로 석사학위를 주는 등 독자성이 크게 훼손됐다.

그 결과 지원자가 줄었을 뿐더러 정부의 지원이 끊긴 후 추진한 행정대학원(원장 오연천)과의 통합도 '두 기구가 교육과정과 역사에서 워낙 다를 뿐 아니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없다'는 반대에 부닥쳐 사실상 무산됐다.

이에 따라 신입생 선발 기준으로 성적보다 사회경험을 중시함으로써 실무 재교육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려 한다.

하지만 안정적 기반을 마련한 대학들이 대부분 이 국제기구.통상.협력 교육 등 기능적인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문제다. 그럼에도 실패로 보아선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문정인 원장은 "원래 정부가 지원하려했던 대학이 5개이고 그 중 두세개라도 독자적 기반을 갖췄다면 목표는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며 "정부의 다른 투자와 비교해 봐도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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