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샤를 보들레르 '포도주의 혼'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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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어느 날 저녁,포도주의 혼이 술병 속에서 노래하더라:

"사람아, 오 불우한 자여,유리의 감옥 속에,

진홍의 밀납 속에 갇혀서,내 그대 향해

목청 높여 부르노라,빛과 우정이 넘치는 노래를!

나는 알고 있나니,내게 생명을 주고 영혼을 주려면,

저 불타는 언덕배기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땀과 찌는 듯한 태양이 있어야 하는가를,

그러나 나는 헛되거나 해롭지 않으리,

노동에 지친 한 사내의 목구멍 속으로

떨어져 내릴 때면 내 기쁨 한량없기에

그의 뜨거운 가슴속은 정다운 무덤이 되어

내 써늘한 지하실보다 한결 더 아늑하기에.

(중략)

내 그대 가슴속으로 떨어져,신이 드시는 식물성 양식,

영원한 파종자가 뿌린 진귀한 씨앗이 되리라,

우리들의 사랑에서 시가 움터서

한 송이 귀한 꽃처럼 신을 향해 뿜어 오르도록!"

- 샤를 보들레르(1821~1867) '포도주의 혼'중

우리도 포도주가 유행이란다. 보졸레.누보도.파리 사람들과 같은 날 받아다 마신단다. 캘리포니아.호주.칠레산 포도주도 프랑스 것 못지 않게 향기롭단다. 그러나, 사람아, 그 어디에 보들레르의 술 노래가 있더냐. "유리의 감옥", "써늘한 지하실",혹은 목구멍 속으로 "떨어지는" 술의 '깊이'와 '불타는 언덕배기'와 찌는 듯한 태양, 그리고 "뜨거운 가슴"에서 신을 향해 "뿜어 오르는" 진귀한 꽃의 '높이', 그 둘 사이의 변증법을 노래하는 시와 함께 포도주를 마시면 술에 취할까, 시에 취할까.

김화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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